서울 마포구 안중한의원에서 만난 안병수(43) 원장은 우리 가양주 문화를 되살리고 싶어하는 전통주 회사 대표이기도 하다. 안 원장의 명함도 두 개다. 하나는 대한약침학회 부회장 직함이 적힌 명함이고 나머지는 전통주 제조 업체 ‘산수’ 대표 명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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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을 따라 자연스레 한의대에 진학한 그는 대학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자취방에 접대용 술까지 비치해 놓고 친구들이 오면 함께 마셨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안 원장과 술과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연히 한 헌혈에서 ‘B형 간염’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 ‘발효 한약’ 연구하다 누룩·전통주 공부에 빠져
대학 졸업 후 안 원장은 한약의 문제점에 대해 고찰한다. 그는 “한약은 이따금 소화장애가 일어난다는 것과 맛이 써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이라며 ‘발효 한약이 이런 부분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2007년부터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며 발효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억대를 호가하는 발효 기계와 발효 연구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 발효 한약 연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대신 안 원장은 발효의 일종인 누룩을 이용한 전통주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다. 안 원장은 “우황청심환 같은 약도 사실 안에 누룩이 들어가 있다”며 “친척을 통해 전통주 속 누룩을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술을 잘 못 마시는 안 원장도 작은 양이나마 음주를 재개했다 .
◇ 주말 주택 찾아 나선 홍천 땅에 반해 양조장 차려
2012년 주말 주택 자리를 찾으러 떠난 강원 홍천 땅에 반해 그곳에 양조장을 차린다. ‘산수’라는 이름의 법인도 세웠다. 다음해 4종류의 전통 막걸리를 생산했지만 안 원장의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는 정식 출시를 포기하고 2년 더 전통주 공부에 매진한다. 우리 고유의 풍미가 넘치는 가양주를 ‘제대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은 지난해 11월 ‘동정춘’과 ‘호모루덴스’라는 두 종류의 전통주 출시로 결실을 보게 된다. 동정춘은 조선시대 실용백과사전이던 ‘임원경제지’와 1924년에 나온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온 제조과정을 따른 술로 우리 고유의 전통주를 되살려보고자 하는 안 원장의 뜻이 담겨있다. 호모루덴스는 라틴어로 ‘유희의 인간’이라는 뜻인데 동명의 서적을 읽고 ‘술을 마시는 것이 바로 이웃과 교감하며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 생각해 명명했다.
◇ 프리미엄 전통주 문화 바람 일으키고 싶어
안 원장은 2012년부터 지금까지 이 일을 하는데 땅·건물·양조장 시설까지 4억~5억원을 투자했다. 아직 수익은 미미하다. ‘산수’에서 내놓는 전통주는 현재 시중 마트에선 맛볼 수 없다. 대신 서울 홍대, 이태원, 서래마을 등 10여곳의 주점에 납품 중이다. 안 원장은 적극적인 마케팅보단 알음알음 이 술을 구하는 주점에 택배로 상품을 보내거나 본인이 직접 차를 타고 술을 직접 납품한다.
안 원장의 다음 목표는 프리미엄 전통주 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그는 “일본식 주점인 이자카야에서 몇 만원씩 주고 사케는 마시면서 정작 우리 프리미엄 전통주는 외면받고 있는 현실을 바꾸고 싶다”며 가양주 사랑을 표현했다. 이어 “홍천지역에 산수를 포함 소규모 양조장 업체가 다섯 군데 정도 있다”면서 이를 관광상품화 하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