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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률 높여야 생존" 대학가 '학과 리모델링' 열풍

신하영 기자I 2015.05.11 18:30:00

건국대 학부과정서 국내 최초 ‘줄기세포 재생학과’ 신설
숙대 인문계열 등 정원 줄여 IT·화공생명공학부 만들어
신입생 유치, 취업률 제고서 성과 내려 ‘학과 리모델링’
일부선 “인력수요 전망 어긋나면 졸업생만 피해” 우려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대학들이 앞다퉈 기존 학과를 바이오, 로봇, 스마트카 등 산업현장에서 각광받는 분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2018학년도부터 고교 졸업자 수보다 대입정원이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학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 축산학과→줄기세포 재생생물학과로 개편

건국대는 11일 기존의 동물생명공학과(옛 축산학과)를 ‘줄기세포 재생생물학과’로 개편한다고 밝혔다. 그간 줄기세포 연구는 대학원 생명공학과나 의학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학부 교육과정에 줄기세포 관련 학과를 개설한 것은 건국대가 처음이다. 건국대는 당장 올해 치러지는 입시(2016학년도)에서 신입생 43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건국대가 학과 신설과 신입생 모집을 서두르는 이유는 하루가 다르게 줄기세포 관련 시장규모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학 ‘동물생명공학과 학과발전 TF’ 팀장인 조쌍구 교수는 “줄기세포와 재생생물학 분야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매년 10% 가까운 성장이 예상돼 관련 학과를 신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글로벌 줄기세포·재생의료 연구개발 촉진 센터(GSRAC)’에 따르면 전 세계 줄기세포 시장은 2012년 39억 달러에서 연평균 7.6% 성장해 2020년에는 7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대학들이 시장규모에 따라 교육·연구 수요가 늘어나는 분야에서 학과를 신설하는 이유는 학생 충원과 취업률, 연구력 제고 때문이다. 시장 전망이 밝은 분야의 학과를 개설해야 졸업생 취업률이 높아지고, 높은 취업률은 우수 신입생 유치로 이어진다. 신성장 산업분야 연구를 선점하면 정부로부터 연구개발(R&D)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조 교수는 “정부의 줄기세포 분야의 투자가 확대되는 추세에 맞춰 연구비 수주, 산·학·연 공동연구를 통해 연구 경쟁력을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학문 경계 허문 융·복합학과 신설 확산

이 같은 학과 리모델링은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과 맞물려 확산추세다. 최근에는 기술 간 융합이 활발해지면서 융합학과를 선보이는 대학들이 많다. 한양대는 서울 주요대학 중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신설학과 선보인 곳이다. 지난 5년간 자동차·로봇·국방·에너지 분야 등에서 새로운 학과를 잇따라 개설했다.

한양대는 1995년 기계공학부에 통합시켰던 자동차공학과를 16년 만에 다시 분리해 2011년 ‘미래자동차공학과’를 신설했다. 산업 수요에 발맞춰 학과를 리모델링한 대표적 사례다. 대학 측은 자동차 시장의 기술경쟁이 점차 스마트카 개발을 위한 융·복합 경쟁으로 바뀌자 학과 명칭을 아예 ‘미래자동차공학과’로 정했다. 커리큘럼에 자동차공학 관련 교과목 외에도 전기·전자·통신·재료 분야 과목들을 추가했다.

여자대학이 사회적 수요를 감안해 공과대학을 신설한 경우도 있다. 숙명여대는 올해 치러지는 입시(2016학년도)에서 IT공학과(40명)와 화공생명공학부(60명)에서 모두 100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이 중 화공생명공학부 정원 60명은 인문(37명)·자연(18명)·예체능(5명) 계열의 정원을 줄여 확보했다. 손병규 숙명여대 기획처장은 “향후 공학 분야에서 인력 부족이 예상돼 IT공학과와 화공생명공학부를 신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설학과와 관련된 분야에서 실제 인력수요가 전망과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입게 된다. 실제로 대학가에서는 ‘특성화’를 내세우며 학과를 신설했다가 수요 예측 실패로 폐과한 사례도 적지 않다. 단국대가 2014학년에 신설한 생명의료정보학과를 보건행정학과와 통폐합하겠다고 발표, 학생들이 반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최근 학문 간 융합이 유행을 타면서 신설학과를 급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 졸업 후 관련 분야에서 산업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졸업생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며 “대학의 학과 신설은 철저한 인력수급 전망을 토대로 개설돼야 대학과 학생 모두 만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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