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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일(현지시간) 사흘간 치러진 러시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푸틴은 “개표 98% 기준, 87.3% 득표로 당선을 확정 지었다”고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8일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 대선에서 첫 80%대 득표율이며,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경쟁 시늉조차 하지 않은 다른 후보 3명은 4% 안팎의 득표율에 그쳤다. 투표율도 74.2%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러시아 대선 최초로 도입한 온라인 투표 기록은 더 높은데 440만명이 참여해 최종 94%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푸틴의 압도적 승리에는 러시아인들의 사회적 안정 속 점진적 개혁에 대한 수요, 지정학적 위기의 심화 속에 강한 지도자에 대한 희구, 적수 없는 1인 체제 구축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역사적으론 푸틴이 주도해온 러시아 국가주의 강화가 있다. 러시아엔 냉전 시대 미국과 대등하게 국력을 겨루던 영광에 대한 향수가 존재하고 소련 붕괴 트라우마가 없는 젊은층도 경제적 안정을 우선하는 분위기로 전해졌다. 소련 붕괴 이후 국가적 위상이 나락으로 떨어진 1999년에 권한대행을 맡아 2000년 처음 대통령에 오른 푸틴은 ‘강한 러시아’ 정책을 펼쳤다. 이에 러시아가 서방 전체에 맞서는 상황을 보며 강대국의 위상 회복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어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 힘입어 러시아가 회생한 측면도 있지만, 소련 비밀정보기관 KGB 출신으로 여론 통제와 정적 배제를 추진한 푸틴 특유의 국정 장악력이 있다.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리고 재선도 가능하게 하는 등 스탈린도 하지 못했던 철권통치 발판을 마련한 것도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시간대가 11개일 정도로 광활한 영토라 번영을 위해 중앙집권적 강력한 리더를 원하는 국가주의 성취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선을 앞두고선 푸틴은 핵전쟁 가능성을 언급하며 서방을 떨게 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 속에서도 석유·가스·식량 등 풍부한 자원을 무기로 예상보다 잘 버티며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4년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 1.1%에서 지난 1월 2.6%로 상향 조정했다. 러시아 실업률은 지난해 10월 2.9%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이번 대선은 ‘푸틴 5기’를 이끌어 갈 강력한 동력을 제공했다. 3년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신임투표 성격도 있다는 점에서 푸틴은 역대 최고 득표율과 투표율을 명분으로 더욱 강력한 철권통치 기반을 구축하게 됐다. 그는 이날 당선 직후 “러시아는 더 강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며 “러시아인의 의지를 외부에서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더 강한 러시아’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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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는 러시아 안팎으로 상당한 저항을 받았다. 선거 첫날 곳곳에서 비밀투표를 보장할 수 없는 투명한 투표함에 액체를 쏟는 항의 표시가 나왔고,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과 접경지 침투 시도도 이어졌다. 선거 마지막 날엔 감옥에서 의문사한 푸틴의 최대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자들이 주도한 ‘푸틴에 맞서는 정오’ 시위가 열렸다. 이에 푸틴은 나발니 사망 한한 달만에 처음으로 “슬픈 일”이라고 언급, 뒤늦게 추모 메시지를 통해 내부 동요를 차단하는데 나서기도 했다.
이에 미국·영국·독일 등 서방에서는 러시아 대선 자체가 ‘가짜 선거’라며 평가절하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자국 점령지에서 진행되는 선거가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이라며 무효를 주장했고 유럽연합(EU)도 이들 지역 선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새 영토’로 부르는 우크라이나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4곳에서도 투표가 진행됐으며, 득표율은 평균 92%가량으로 집계됐다.
이런 비판 속에서도 ‘푸틴 5.0’ 시대에는 추가 징집 등 특별군사작전 정책이 강화되고 서방 분열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푸틴은 당선 직후 ‘누구도 원치 않는 시나리오’라는 전제로 러시아와 미국 주도 나토 동맹의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난다면 세계 3차대전에서 근접하게 될 것이라며 서방을 향해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눈 앞에서 경험한 유럽은 신냉전 체제 속 군비 확대 경쟁이 불가피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방비 기준은 각 회원국 GDP의 2%인데 이를 위해선 연간 560억유로(약 81조원)가 필요하다는 추산도 나왔다. 작년 4월 군사적 중립국을 표방했던 핀란드가 31번째 나토 회원국이 됐고 ‘200년 중립국’ 스웨덴도 지난 8일 32번째 회원국으로 합류했다.
러시아 주도의 반(反) 서방 연대 전략은 한층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러시아는 중국과의 교역 확대, 이란과의 군사협력, 아랍권 국가에 대한 외교적 지원,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개국) 회원국 확대 등을 추진해왔다. ‘글로벌 사우스’로 외교적 확장을 도모하는 러시아는 오는 10월 의장국으로 브릭스 회의를 주재하며, 연대에 힘을 기울일 전망이다.
이밖에 올해 11월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느냐에 푸틴의 승리가 결정될 것으로 보여 서방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과 정보전이 심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빠른 종전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 주목한 켄 오스굿 미 콜로라도 광업대학 교수는 “미국이 원조를 철회하고 우크라이나에 휴전 협상을 압박한다면 푸틴의 승리”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