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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는 소식통을 인용해 영국 5대 로펌, 일명 ‘매직서클’ 그룹이 최근 파운드화 가치 하락으로 미국에서 달러화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 인재 확보에 제동이 걸렸다. 급여 수준이 맞지 않아 신규 직원 채용이 무산되는 사례가 늘었고, 기존 직원들도 급여를 미 달러화로 고정 지급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거부할 경우 인재 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인재 유출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보너스 일부를 무조건 파운드화로 지급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있는 기업들도 같은 우려에 시달리고 있다. 급여 인상을 거부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미 고용시장에서는 40여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급여도 가파르고 오르고 있다. 업체마다 급여 지급시 고정환율을 적용하느냐, 평균환율을 적용하느냐에 따라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고 영국 로펌들의 수익성이 미국 로펌들보다 좋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 달러화를 영국 파운드화로 환산하면 같은 수익이라도 전보다 가치가 줄어든다. 다만 고객에게 달러화나 유로화로 금액을 청구하는 경우엔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다고 FT는 부연했다.
반대로 영국에 진출한 미 기업들은 파운드화 가치 하락에 따른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미 기업에 취직한 영국인들도 마찬가지다. 급여 체계가 미국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로펌 애킨 검프에서 근무하는 한 영국인 변호사는 1분기 15만 9000파운드였던 급여가 3분기에 17만 9000파운드로 인상됐다고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둬들이는 로펌 중 한 곳인 커클랜드 앤드 앨리스가 지난 9월 매직서클 그룹에서 2명의 파트너를 영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2달러에 육박했던 파운드화 가치는 최근 1달러대까지 추락해 37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1달러=1파운드선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3월부터 가파르게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달러화 가치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탓이다. 영란은행(BOE)은 10년간 이어온 양적완화 정책을 끝내고 작년 12월부터 7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대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가 대규모 감세정책을 추진하면서 파운드화 가치 하락을 부추겼다. 영국 정부의 재정악화 우려가 불거지며 투자자들이 영국 국채를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결국 트러스 총리가 감세정책을 철회하고 BOE도 시장에 긴급 개입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국채금리는 연일 급등하고 파운드화 가치도 지속 하락하는 등 시장 불안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한편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영국으로의 유학이나 여행 등의 수요는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달러화 강세로 미국으로의 유학·여행 비용이 급증한 데 따른 풍선효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