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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확정하고 연내 법제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재정준칙이란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범을 뜻한다. 재정준칙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한국과 튀르키예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도입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보편적인 제도다.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사용했던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가 아닌 관리재정수지를 준칙기준으로 설정한다는 방침이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보장성 기금에서 흑자가 발생하기에 관리재정수지를 준칙 기준으로 삼으면 관리가 더욱 깐깐해진다.
관리재정수지 적자한도는 GDP 대비 -3%로 설정하는 동시에, 국가채무비율이 GDP 대비 60%를 초과 시에는 이를 -2%로 더욱 축소키로 했다. 예외사유 역시 △전쟁이나 대규모 재난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 등 대내외 여건의 중대한 변화에 한정한 추경편성조건과 동일하게 잡았다.
이 같은 조건은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재정준칙과 비교해 훨씬 엄격해진 것이다. 문 정부는 ‘-3%’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국가재정법이 아닌 시행령에 위임, 정부가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설계했으나 윤 정부는 이를 국가재정법에 삽입할 예정이다. 문 정부의 준칙은 예외사유 역시 추경편성요건보다 느슨했다.
정부가 강력한 재정준칙 마련에 나선 것은 코로나19 위기와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와 맞물려 국가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 등에 따르면 국가채무 규모는 2017년 660조 2000억원에서 올해 1064조 4000억원으로 5년 사이 무려 61.22%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가채무비율은 GDP 대비 36.0%에서 50.0%로 늘어났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는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않으면 2070년 국가채무비율이 192%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추 부총리는 “국가재정법에 재정준칙 관리기준을 직접 규정, 법적 구속력을 확보하고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처음 편성하는 예산안부터 즉시 적용할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재정준칙이 준수돼 안정적 재정총량 관리를 위해서는 재정준칙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 같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정부입법 형태로 제출한 홍남기표 재정준칙(국가재정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이라, 정부입법 형태로 제출 시 기존 법안을 폐기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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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과반수를 차지하는 거대 야당의 협조다.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에 무게를 두는 민주당은 여당 시절인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홍남기표 재정준칙에 반대했다. 더욱이 정부가 새롭게 내놓은 재정준칙안은 기존 정부안보다 재정관리 한도가 더 엄격해 반대가 더욱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23년 예산안이 발표된 후 “비정한 예산”이라고 비판하며 적극적인 확장재정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 우려도 커지면서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내부의 목소리도 크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 근심은 아랑곳없이 나랏빚만 줄이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를 바로 잡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나라빚 증가 속도가 빠르고 국가 신인도의 위협 요인으로까지 작용하고 있는 만큼 재정준칙 법제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입장이다. 특히 송영길 등 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6년말 국가채무를 전년도 명목 GDP의 0.35%로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재정건전화법안’을 발의했던 것을 들어 야당이 입법에 협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재정준칙이 대규모 재난이나 경기 침체 등 적용 예외사유도 규정하고 있는 만큼, 어쩔 수 없이 재정을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재정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평시에는 재정을 타이트하게 관리하자는 것”이라며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채무비율 40% 초과를 우려하며 ‘재정건전화법’을 발의했던 만큼 재정 상황이 더 악화된 현재 오히려 재정준칙 도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