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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을 비롯해 17~18세기의 건물에서 나타나는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고, 왕실의 원당임을 입증할 수 있는 유물이 보전돼 가치가 있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파계사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구조로 지어졌다. 맞배지붕은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고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을 일컫는다. 건물을 짓기 위해 건물 등의 터를 다진 후 흙이나 돌을 쌓아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가구식 기단과 ‘ㄱ’자형 귀틀석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사하다. 이를 통해 파계사 원통전은 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불단 위에는 보탁(寶鐸)이 설치됐고, 조각 수법이 화려하다는 평가다. 불상이 모셔진 수미단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각종 문양이 뚫새김(투각)돼 있다. 이들 중 봉황과 학은 국가의 안녕과 왕손들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새긴 것이다. 이와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의 내부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 영조 대왕 도포 등은 파계사가 왕실의 원당임을 나타내는 증거다.
파계사는 신라 애장왕 5년(804) 심지 왕사가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팔공산 자락에 원통전과 진동루가 남북축을 이루면서 좌우에 건물이 위치한 전형적인 산지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다. 파계사 원통전은 1606년에 재건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청은 파계사 원통전에 대해 30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을 거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통해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