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서 내린 노인들이 가까워지자 김 여사는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새벽부터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다”고 인사했다. 때로는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손에 들린 작은 아이보리색 꽃다발은 스타티스였다. 꽃말은 ‘영원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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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가 이들을 서울로 초대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광주 오월어머니집을 방문한 자리에서 “용산 대통령실이 정리되면 서울로 꼭 모시겠다”고 했다. 약속을 지키기까지 1년 4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그사이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광주에서 김 여사를 반갑게 맞았던 안성례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이었다. 김 여사는 이날 오찬 간담회에서 그의 이름을 꺼내다 잠시 울먹였다.
“그날 우리 안성례 관장님께서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해 주셨는데….”
김 여사는 “지난 연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더 빨리 모시지 못한 것을 너무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날 상춘재에 모인 오월어머니집 전·현직 임원 18명에게 시간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1980년 5월 이후 46년. 오랜 세월 국가폭력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요구해온 이들은 이제 자신들의 기억을 누가, 어떻게 남길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이춘희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그 현실을 담담하게 전했다. “언제나 굳게 서 계실 것만 같았던 안성례 전 관장님이나 다른 어머니들이 이제는 고령이 됐고, 또 한 분씩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는 오월어머니들이 단지 비극의 피해자로만 기억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우리 오월어머니들은 아픔만 갖고 산 게 아니고 불의에 항거하면서 오늘까지 광주를 지켜오고 대한민국을 지켜왔습니다.”
이 관장은 어머니들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 있을 때 생애사를 기록해 역사에 남겨달라고 요청했다. 광주 여성들의 삶과 투쟁을 기념할 가칭 ‘5·18 여성기념관’ 건립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그의 요청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역사의 증언자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상황에서 기록되지 않은 개인의 삶과 기억도 함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월어머니들의 삶은 1980년 5월에만 머물지 않았다. 김 여사는 이날 5·18 희생자 가족들이 2014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건넸던 위로를 떠올렸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김 여사는 “5·18 엄마가 4·16 엄마에게 건넸던 이 한마디처럼 언제나 우리 사회의 상처를 감싸 안아주신 어머님들의 숭고한 삶과 그 정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사람들이 또 다른 비극을 겪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1980년 광주의 어머니들이 2014년 세월호의 어머니들에게 건넨 위로였다.
그러나 46년이 흐른 지금도 광주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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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오월어머니들의 인연도 화제에 올랐다. 추혜성 감사는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7년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원형 보존을 위한 농성장을 찾았던 일을 기억했다.
추 감사는 “‘당번을 하고 가겠다’며 실제로 농성장에서 하룻밤을 꼬박 지새웠던 이 대통령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이 대통령 부부가 복원된 옛 전남도청을 찾았을 때 감회가 남달랐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이날 오찬에는 작은 배려도 담겼다. 청와대는 상춘재 앞에서 참석자들에게 스타티스 꽃다발을 건넨 데 이어 대정원에서 각자의 개인사진을 촬영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행사 준비 과정에서 오월어머니집 전·현직 임원 상당수가 마땅한 개인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평생 누군가의 어머니로, 희생자의 가족으로, 민주화운동의 증언자로 살아온 이들이 이날만큼은 한 사람의 이름을 가진 개인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김 여사는 꽃다발을 건네며 그 의미를 설명했다. 영원한 기억. 변치 않는 마음.
46년 전 광주의 기억을 간직한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이들도 이제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말하고 있다.
간담회를 마친 김 여사는 상춘재를 떠나는 어머니들을 직접 배웅했다.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꼭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광주에서 했던 초대의 약속은 이날 지켜졌다. 이제 어머니들이 남긴 또 다른 부탁이 있다. 자신들이 떠난 뒤에도 1980년 광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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