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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곧 10달러대서 움직인다”
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물 가격은 이날 장중 한때 배럴당 19.92달러에 거래됐다. 전거래일 대비 6% 이상 폭락한 것이다. WTI 가격은 올해 초 배럴당 61.18달러(1월2일 기준)였다가, 불과 석 달 사이 3분의1 토막으로 쪼그라들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 5월물은 장중 배럴당 23.03달러까지 내렸다. 전거래일과 비교해 7% 넘게 떨어졌다. 2002년 11월 이후 거의 18년 만의 최저치다. 브렌트유 역시 연초 배럴당 66.25달러에서 40달러 넘게 폭락했다.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주요국들이 이동제한령을 내리면서 경제 활동이 멈추고 있고, 이에 따라 원유 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탓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침체에 진입했다”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만큼 나쁘거나 혹은 더 나쁠 것”이라고 했다.
개리 로스 블랙골드인베스트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블룸버그통신에 “급격한 원유 수요 감소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조만간 WTI와 브렌트유가 10달러대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공급 측면이다. 증산 경쟁에 돌입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간 갈등 해결이 여전히 요원하기 때문이다. 원유 수요가 절벽 수준으로 떨어진 와중에 공급이 늘면 가격은 수직낙하가 불가피하다.
비베크 다르 호주 커먼웰스은행 원자재 연구원은 “원유 시장을 무너뜨리고 있는 건 사우디와 러시아”라며 “두 나라는 (증산하겠다는) 최근 행보를 이어가려는 신호를 주고 있다”고 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마이너스(-) 유가 전망마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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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유가는 일견 나라 경제에, 특히 한국 같은 원유소비국에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원유시장은 ‘스위트 스폿(sweet spot)’ 개념이 있다. 너무 내려도, 너무 올라도 문제인 유가의 ‘딱 적정한’ 레벨이다. 경제계는 이를 배럴당 50~60달러 정도로 본다.
초저유가는 원유생산국 입장에서 명백한 악재다. 원유가격이 하락하면 교역조건 악화→경상수지 악화→민간소비 감소 등의 경로를 통해서다. 원유소비국은 기업 생산비가 감소하고 가계 구매력이 증가하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수출단가 하락 △대(對) 원유생산국 수출 감소 등으로 수출이 급감할 가능성이 동시에 있다. 한국은 국제유가가 20달러 초반까지 급락한 2016년 1월 당시 수출 증가율이 -19.6%까지 곤두박질 쳤던 경험이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전례 없는 실물경제 위기 때 초저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더 문제다. 기대인플레이션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소비 감소→생산 감소→소득 감소→소비 감소의 디플레이션 악순환(deflation spiral)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초저유가는 단기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셰일가스업계의 줄도산을 부를 우려도 있다. 배럴당 20달러 안팎의 유가는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탓이다.
원유시장이 흔들리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영향을 받고 있다. 오후 2시(한국시간 기준) 현재 일본 닛케이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3.34% 떨어지고 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59%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