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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스웨덴 의회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신뢰’라는 주제의 연설에서 “북한이 대화의 길을 걸어간다면, 전세계 어느 누구도 북한의 체제와 안전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신뢰하고, 대화 상대방을 신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이날 연설에서 △남북 국민간 신뢰 △대화에 의한 신뢰 △국제사회의 신뢰 등 남북 신뢰의 3대 원칙을 제시하면서 “어떤 전쟁도 평화보다는 비싼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인류가 터득한 지혜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하는 것은 남북은 물론 세계 전체의 이익이 되는 길”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 대통령의 이날 연설에는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을 비롯해 스웨덴 의회 의원 및 정부인사, 스톡홀름 주재 외교단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전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신뢰”
존경하는 국왕님,
안드레아스 노를리엔 의장님과 의원 여러분,
내외 귀빈 여러분,
구 모론! (안녕하십니까)
노벨평화상 수상자 알바 뮈르달 여사는
바로 이 자리에서
전세계 군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처음으로 선언했습니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도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
바로 이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 비전을 재차 천명했습니다.
그로부터 19년이 흘렀는데,
한반도 평화에 얼마나 진전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유서 깊은 스웨덴 의사당에서 연설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따뜻하게 반겨주시고 연설의 기회를 주신
스웨덴 국민과 국왕 내외분, 의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스웨덴은 대한민국의 오랜 친구입니다.
한국전쟁 때 야전병원단을 파견해서
2만5천 명의 UN군과 포로를 치료하고,
한국의 국립중앙의료원 설립을 도왔습니다.
민간 의료진들은 전쟁 후에도 부산에 남아
수교도 맺지 않은 나라의 국민을 치료하고 위로했습니다.
스웨덴은 한국인에게 오랫동안 이상적인 나라였습니다.
1968년, 한국이 전쟁의 상처 속에서 민주주의를 꿈꾸던 시절
한국의 시인 신동엽은 스웨덴을 묘사한 시를 썼습니다.
그 시의 일부를 읽어보겠습니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 여행 떠나는 총리는 기차역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있을 때,
그걸 본 역장은 기쁘겠소라는 인사 한마디만을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그 중립국에서는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는 나라,
황톳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
한국인들은 이 시를 읽으며
수준 높은 민주주의와 평화, 복지를 상상했습니다.
지금도 스웨덴은 한국인이 매우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한국인들은 한반도 평화를 돕는 스웨덴의 역할을
매우 고맙게 여기고 신뢰합니다.
스웨덴은 서울과 평양, 판문점 총 3개의 공식 대표부를 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입니다.
북한 역시 스웨덴의 중립성과 공정함에
신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지난 70년 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해 변함없는 성의를 보내준
스웨덴 국민과 지도자들께 경의를 표하며,
한국 국민의 뜨거운 우정의 인사를 전합니다.
의원 여러분,
내외 귀빈 여러분,
스웨덴과 대한민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에 위치한,
지리적으로 아주 먼 나라이지만
서로 닮은 점이 많습니다.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반도에 위치하여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을 치렀고,
주권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습니다.
스웨덴은 18세기부터 100년간 대기근으로,
한국은 20세기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며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국민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점이 특히 닮았습니다.
근면과 불굴의 의지를 가진 양국 국민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가난한 나라를 잘 사는 나라로 일으켰습니다.
잘 교육받은 청년들은 혁신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양국 정부는 이들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도록
창업과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문화를 사랑하는 양국 국민이 이룬 예술적 성취 역시 놀랍습니다.
양국의 문화예술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인은 아바(ABBA)와 방탄소년단(BTS)의 음악을 좋아하고,
스웨덴 작가 린드그렌의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과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한국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습니다.
무엇보다 두 나라의 가장 큰 공통점은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입니다.
스웨덴 국민의 훌륭함은
단지 자국의 평화를 지키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의 평화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스웨덴은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는
국제사회의 평화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고통 받는 인류를 향해 기꺼이 손을 내밀어온 스웨덴의 역사는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를 꿈꾸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스웨덴의 여름만큼 아름답고 화창한 봄날의 판문점을
세계인들이 주시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사상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남북의 정상은 10년만에 다시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다시는 전쟁으로 인한 불행을 겪지 않겠다’는
국민들의 간절한 열망이
분단의 상징 판문점을 일순간에 평화의 산실로 되돌렸습니다.
어렵사리 만난 남과 북은 진심을 다해 대화했고,
평화와 번영, 공존의 새로운 길을 열기로 약속했습니다.
남북군사합의서를 체결하여
적대행위 중지, 비행금지구역 설정,
DMZ 내 감시초소 철수와 공동 유해 발굴 등에 합의했습니다.
그날의 만남으로 드디어 남북 사이에 오솔길이 열렸습니다.
정전협정 후 65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던 비무장지대의 숲에
11개의 오솔길이 생겼습니다.
이제 곧 남북 국민들이 오가는 수많은 길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올해는 DMZ ‘평화의 길’이 열려
군인이 아니면 갈 수 없었던 비무장지대를
일반인들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 국민들은 이런 변화가
평화를 바라는 세계인의 지지와 성원,
국제적 연대 덕분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 평화를 만들 당사국들이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스웨덴의 역할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스웨덴 국민의 응원으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희망을 더욱 크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부터 역사적인 1,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스웨덴이 했던 큰 역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의원 여러분,
내외 귀빈 여러분,
스웨덴의 오늘을 만든 힘은 ‘신뢰’입니다.
스웨덴 국민은 서로를 신뢰하고 정부와 기업을 신뢰합니다.
1938년 역사적인 쌀트쉐바덴 협약과 같이
노사가 합의를 거쳐 결정을 도출하고, 결정이 내려지면
모두가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지혜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스웨덴의 쉰들러 리스트라 불리는 라울 발렌베리와
‘하얀 버스’로 2차 세계대전 전쟁포로를 구출한
폴케 베나도트의 활약은
개인이 어려움을 겪을 때,
누군가가 나서서 도울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왔습니다.
스웨덴의 국민은
‘좋은 사회가 되려면 구성원 모두가 기여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평화도 같습니다.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서도 모든 나라의 기여가 필요합니다.
스웨덴은 개발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핵무기 보유를 포기했습니다.
새로운 전쟁의 위협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핵으로 무장하기보다 평화적인 군축을 제시하고 실천한 것은
스웨덴다운 선택이었습니다.
스웨덴이 어느 국가보다 먼저 핵을 포기할 수 있었던 데는
인류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신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궁극적으로 ‘평화를 통한 번영’을 선택할 것이라는
신뢰였습니다.
핵확산방지 활동, 최고 수준의 공적개발원조(ODA) 등을 통해
스웨덴은 자신의 신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스웨덴을 따라 서로에 대한 신뢰를 키우고 있습니다.
인류애와 평화에 앞장서고 있는 스웨덴 국민께
경의를 표합니다.
의원 여러분,
내외 귀빈 여러분,
저는 스웨덴의 길을 믿습니다.
한반도 역시 신뢰를 통해 평화를 만들고
평화를 통해 신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남과 북 간에 세 가지 신뢰를 제안합니다.
첫째, 남과 북 국민 간의 신뢰입니다.
평화롭게 잘 살고자 하는 것은 남북이 똑같습니다.
헤어져서 대립했던 70년의 세월을
하루아침에 이어붙일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차이가 크게 느껴질 때도 있고, 답답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은 단일 민족 국가로서
반만년에 이르는 공통의 역사가 있습니다.
대화의 창을 항상 열어두고, 소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오해는 줄이고, 이해는 넓힐 수 있습니다.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한 대화는
이미 여러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행위가 중단되었습니다.
남북의 도로와 철도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접경지역의 등대에 다시 불을 밝혀,
어민들이 안전하게 고기잡이에 나설 수 있게 됐습니다.
작지만 구체적인 평화, 평범한 평화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평범한 평화가 지속적으로 쌓이면
적대는 사라지고
남과 북의 국민들 모두 평화를 지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항구적이고 완전한 평화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둘째, 대화에 대한 신뢰입니다.
세계는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원합니다.
어떤 나라도 남북 간의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무너지면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이 무너지고
전 세계에 엄청난 재앙이 될 것입니다.
어떤 전쟁도 평화보다는 비싼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인류가 터득한 지혜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하는 것은
남북은 물론 세계 전체의 이익이 되는 길입니다.
평화는 평화로운 방법으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화입니다.
북한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도 핵무기가 아닌 대화입니다.
이는 한국으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북 간의 평화를 궁극적으로 지켜주는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대화입니다.
서로의 체제는 존중되어야 하고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평화를 위한 첫 번째이며 변할 수 없는 전제입니다.
북한이 대화의 길을 걸어간다면,
전 세계 어느 누구도
북한의 체제와 안전을 위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신뢰하고,
대화 상대방을 신뢰해야 합니다.
신뢰는 상호적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대화의 전제입니다.
한국 국민들도 북한과의 대화를 신뢰해야 합니다.
대화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평화를 더디게 만듭니다.
대화만이 평화에 이르는 길임을
남북한 모두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국제사회의 신뢰입니다.
반만년 역사에서 남북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습니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슬픈 역사를 가졌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발적인 충돌과 핵무장에 대한
세계인의 우려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기위해서는 이 우려를 불식시켜야 합니다.
북한은 완전한 핵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국제사회에 실질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때까지
양자대화와 다자대화를 가리지 않고
국제사회와 대화를 계속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이 합의한 교류협력 사업의 이행을 통해
안으로부터의 평화를 만들어 증명해야 합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진정으로 노력하면
이에 대해 즉각적으로 응답할 것입니다.
제재 해제는 물론이고 북한의 안전도 국제적으로 보장할 것입니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신뢰 회복을 위해
북한과 함께 변함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남북 간의 합의를 통해 한국이 한 약속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더욱 굳건하게 할 것입니다.
남북이 함께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면
더 많은 가능성이 눈앞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벗어나 남북이 경제공동체로 거듭나면
한반도는 동북아 평화를 촉진하고,
아시아가 가진 잠재력을 실현하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남북은 공동으로 번영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는
세계 핵확산방지와 군축의 굳건한 토대가 되고,
국제적·군사적 분쟁을 해결하는 모범사례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남과 북은 한반도의 평화를 넘어서서
세계 평화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왕님,
안드레아스 노를리엔 의장님과 의원 여러분,
내외 귀빈 여러분,
‘냉전시대의 첫 열전’이었던 한국전쟁으로
남북뿐만 아니라 참전국의 장병들까지 수많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쟁 개시 3년 만에 정전이 성립되었지만,
비극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종전이 아닌 정전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은 냉전에 갇혀 70여 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평화와 공존을 위한 노력은 냉전질서에 압도돼
번번이 좌절되었고 한반도의 겨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평화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의 지독한 추위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는 시작되었고 한반도의 봄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스웨덴 국민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오늘의 우리를 격려하는 듯합니다.
“겨울은 힘들었지만 이제 여름이 오고,
땅은 우리가 똑바로 걷기를 원한다“
트란스트뢰메르가 노래한 것처럼
한반도에 따뜻한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언제나 똑바로 한반도 평화를 향해 걸어갈 것입니다.
지난 70년간 함께 해주신 것처럼
스웨덴 국민께서 함께 걸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탁 소 뮈케(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