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뿌리는 어디인가”…자녀의 인격권 제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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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임산부의 출산부터 아동보호까지 공적체계 하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보호출산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연구원은 최근 보호출산제도의 헌법적 쟁점을 지적하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현행 입양특례법에서는 입양인이 친생부모 정보공개를 청구하면 친생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정보를 공개받을 수 있다. 보호출산제도 이와 동일한 구조다.
보고서는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사람의 ‘뿌리를 알 권리’는 헌법 제10조의 인격권에서 도출되는 기본권”이라며 “현행법은 원칙적으로 생모의 동의 없이는 정보 공개가 불가능해 이 권리가 상당히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3년간(2021~2023년) 기존 입양제도 하에서의 입양정보공개 통계를 보면, 친생부모 인적사항 공개율은 평균 16.4%에 그쳤다. 친생부모가 정보 공개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경우는 6.9%에 불과했지만 무응답·소재불명·정보 부존재로 53.2%가 공개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는 보호출산제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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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프랑스는 우리보다 앞서 유사 제도를 도입했다. 독일의 ‘신뢰출산제’는 자녀가 16세가 되면 생모의 정보 열람을 청구할 수 있고 생모가 반대해도 가정법원이 양측 이익을 형량해 결정할 수 있다.
반면 프랑스의 ‘익명출산제’는 우리와 유사하게 생모의 동의를 중시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03년 프랑스의 익명출산제가 유럽인권협약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2012년 이탈리아의 경우 “자녀의 뿌리를 알 권리와 생모의 익명성 사이 적절한 균형을 찾지 못했다”며 협약 위반 결정을 내렸다.
보고서는 “현행 보호출산제는 위기임부의 익명성에 더 무게를 둔 제도로 평가할 수 있다”며 “생모의 동의 없이는 정보 공개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독일과 달리 법원 등 제3자가 개입해 판단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헌법재판硏, 공개 청구 기회 확대 등 개선안 제시
헌법재판연구원은 보호출산제의 여러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우선 출생증서 공개 청구 기회를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모의 상황과 의사가 변할 수 있으므로 1회로 제한하지 않고 일정 기간 후 재청구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또한 의료적 목적 외에도 정보공개 예외사유를 확대하고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현행법상 위기임부의 의사결정능력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보호자’가 대리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언급했다. 이는 지나친 기본권 제한이므로 요건과 절차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출산 후 아동보호 신청제도에 대해서도 출생통보제의 취지를 약화시키므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소은영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이 보고서에서 “보호출산제의 궁극적 한계는 임신갈등 상황 전반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고, 원가정 양육 지원이 미흡하다는 점”이라며 “영아유기 방지라는 목적에 집중해 위기임산부의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거나 중단하는 전반적인 갈등상황을 다루지 못하고 있어 임신·출산·양육에 대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 연구관은 “미혼모 등에 대한 사회적 낙인 때문에 출산에서 원가정 양육으로의 이행이 아닌 모자관계의 단절로 귀결돼 버리고 그것이 아동의 뿌리를 알 권리의 제한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보호출산제도가 위기상황의 자녀와 모(母)의 기본권을 단기적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출산·양육에 관한 포괄적인 제도 개선과 사회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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