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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안전 교사에게 전가"…속초사건 후 체험학습 거부 확산

김윤정 기자I 2024.07.03 16:39:06

속초 현장체험학습 중 교통사고 사망…인솔교사 재판行
"사고 나면 법정서야" 불안한 교사들…"안 가도 그만"
교장 선출과정서 '체험학습 진행 여부'가 공약되기도
"교육당국 예산·인력 지원 필요" 주장에 교육청 '난색'

[이데일리 김윤정 기자] “교장 공모 과정에서 현장체험학습 진행 여부가 마치 ‘사상검증’처럼 이뤄졌다. 야외로 체험학습을 가겠다고 하면 학부모 편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교사들 편에 선 것처럼 여겨지는 식이다.”

지난해 9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경궁으로 현장체험학습을 나선 어린이들이 궁을 둘러보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계 없음. (사진=뉴시스)
서울 A초등학교는 지난달 교장공모제를 통해 새로운 교장 후보를 선출했다. 교장공모제는 공모를 통해 교장을 선발하는 제도로, 학부모·교사가 심사에 참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장체험학습 진행에 대한 교장 후보들 견해가 하나의 평가 기준으로 작용한 셈이다. A초등학교 관계자는 “체험학습 중 혹여나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교사들은 야외로 나가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며 “반면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야외 체험학습을 진행하길 바라는 데서 생긴 일”이라고 밝혔다.

교사에게 현장체험학습 도중 생긴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한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체험학습을 연기·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강원도 속초 현장체험학습 사례에 대한 재판이 지난 4월 시작되면서 논란이 촉발된 결과다. 2022년 초등학교 현장 체험학습 장소였던 강원도 속초 테마파크 내 주차장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초등학생이 버스에 치어 숨진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인솔교사 2명이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를 기점으로 학교 현장에선 체험학습을 둘러싼 교사·학부모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 B초등학교에서는 학교 측이 체험학습 연기를 통보하자 학부모 운영위원들이 학교에 항의방문하는 일도 생겼다. 해당 초등학교 관계자는 “체험학습을 가는 것이 교육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교사 보호 장치 마련 전까지는 불안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B초등학교는 이번 주 학부모 운영위원들과 교사들 간 토론 자리를 마련해 향후 체험학습 진행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

교사들은 체험학습 시 교사에게 부여된 역할이 과도하다고 호소한다. 수도권의 초등학교 C교장은 “야외 현장체험학습 진행이 학교의 의무는 아니다”라며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을 위해 가는 것인데 불의의 사고마저 교사들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게 된다면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장체험학습은 초중등교육법상 규정된 필수 교육활동은 아니다. 현행법은 각 학교가 여건에 맞게 체험학습을 자율적으로 편성해 시행하도록 하고 있어서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현장체험학습을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5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 52%는 ‘현장체험학습을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기백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각 학교에서는 최대한 안전하게 현장체험학습을 진행하도록 노력 중이지만 법령이 개정되지도 않았고 판례가 확립되기도 전이라 교사들이 불안감을 느낀다”며 “학생 안전을 위한 교육 당국의 예산·인력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지역 교육청에선 현장 체험학습만을 위한 별도 지원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예산·인력의 한계가 있어 학교 현장체험학습 진행만을 위한 인력을 별도 지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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