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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혐의로 이기영이 경찰에 긴급체포된 뒤 이기영이 살던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주민들에게서 “개 짖는 소리가 난다”는 신고를 접수해 파주시와 경찰에 협조를 구했다. 파주시는 이기영으로부터 반려동물 포기 각서를 받고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이하 동구협)에 해당 반려동물들을 임시 위탁했다.
동구협은 일정 기한 내 입소한 유기동물의 입양 문의가 없을 시 안락사를 시행하는 곳이다. 다만 4마리 모두 언론 보도를 접한 시민들의 관심 속에 무사히 입양됐다.
그러나 문제는 입양된 4마리가 유기동물이 아니라 범죄 현장에 무방비로 노출되며 학대를 경험한 동물이라는 점이다. 수사 관계자들은 현장 검증을 위해 이기영이 머물던 집을 수차례 방문했으나 어떠한 이유에선지 방치된 동물을 구조하지 않았다. 범죄에 노출된 반려동물의 생살여탈권이 시스템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수사관이나 시민들의 개별 의지에 좌우됐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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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정부에선 동물 보호를 넘어 ‘동물 복지’로 제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선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시민들이 동물 방치와 학대 등의 범죄를 알려도 (일부 지자체 등에선)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긴급보호동물 인수제 실효성 의문…민관 협력 필요
일례로 지난 2018년 서울시는 사각지대에 놓인 동물에 대한 긴급 구호 체계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긴급보호동물 인수보호제’를 전국 지자체 최초로 실시했다.
혼자 거주하는 동물 소유자가 사망·구금·장기 입원 등의 사유로 그 소유자의 반려동물이 방치될 때 소유권 이전 절차를 거쳐 서울시가 동물을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로 인계해 구조·보호하는 제도다. 단 무분별한 유기를 막기 위해 지자체 등은 엄격한 현장 조사를 거쳐 동물 인수 여부를 결정한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작년 4월 동물보호법 전면 개정에 발맞춰 해당 법 제44조 ‘사육동물인수제’에 관한 시행 규칙을 마련했다. 제44조에 따르면, 정부는 동물 소유자의 요양·병역·장기 입원 등 극히 제한적 사유에 한해 동물의 소유권을 인수하고 보호할 수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제44조의 가장 중요한 고려 기준은 ‘동물이 어떤 주체에 의해 돌봄을 받고 있는지 여부’”라며 “위기에 처한 동물이 정상적 돌봄을 받지 못할 사정이 있다면, 지자체가 인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파주 연쇄살인사건에서 방치된 동물도 44조가 규정하는 동물 인수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현장에 출입했던 담당자들이 관련 지자체 동물보호과에 문의했다면, 적절한 조치가 이른 시일 내 취해졌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이번 사안은 민관 협력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워낙 지자체 보호소 상황이 열악해 유기동물이 아님에도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