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해시드오픈리서치(HOR) 대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확실시되는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역삼동 해시드벤처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크립도 산업 발전 역사에서 손꼽힐 만한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평가하며 이같이 말했다. HOR은 국내 최대 크립토 전문 벤처캐피털(VC) 해시드의 싱크탱크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김 대표를 주축으로 2022년 8월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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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ETF 출시로 비트코인이 대중 투자자산 반열에 오르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먼저 “이미 비트코인은 시가총액이 9000억 달러에 이른다”며 “금과 애플 주식 등에 이어 글로벌 톱10 투자 자산”이라고 짚었다. 이어 “이제 ETF 승인으로 기관의 대규모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된 만큼 비트코인 시장은 훨씬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기관들은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절차가 불편하고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있어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이미 정형화된 투자 수단인 ETF로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게 되면서 기관이 쉽게 비트코인 시장에 진입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대형 기관·연기금·보험회사들이 보유 자산의 1~3%는 비트코인에 배분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예컨대 미국 퇴직연금 401K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사면 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모두 비트코인에 간접 투자하는 셈이 된다”며 “비트코인이 대중 투자 자산이 됐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또 금 시장이 ETF 출시 이후 성장한 선례를 비트코인도 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김 대표는 “ETF는 일종의 간접 투자의 혁명”이라며 “금 ETF가 나오고 금 시장의 수요가 크게 늘고 시장 자체가 혁신적으로 바뀐 것처럼 비트코인 ETF도 똑같은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2004년 11월 금 ETF가 출시된 후 금 가격은 7년 만에 4배 이상 상승했다. 현재 미국에서 거래되는 금 ETF는 35개로 총 관리자산은 1187억7000만 달러에 달한다.
◇가상자산 생태계 확대 변곡점
특히 비트코인 현물 ETF는 직접적인 비트코인 수요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비트코인 선물 ETF는 3개월·6개월 뒤에 비트코인을 살 수 있는 계약을 주고받는 상품으로 비트코인 움직임을 따라가긴 하지만 비트코인을 직접 매입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현물 ETF는 비트코인 현물을 1대 1로 직접 매입한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수요를 창출한다”며 “기관 자금이 유입되면 비트코인 현물 가격도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대표는 비트코인 가격 상승은 1차원적인 효과일 뿐이며 산업 생태계에 미칠 영향에 더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비트코인 현물 ETF는 크립토 산업과 금융 시장을 바꿀 게임체인저”라고 단언했다.
가상자산 산업에 대해선 “비트코인이 가상자산 전체 기축 통화 역할을 하는 만큼 다른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 수요도 함께 커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블록체인 인프라 및 서비스 개발 업체 커스터디(수탁) 업체 등에 투자가 늘고 뛰어난 인력들이 유입돼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변곡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한마디로 이 생태계가 완전 레벨업하게 될 것”이라며 “크립토 산업이 이번 승인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라고 강조했다.
금융 산업도 새로운 에셋군인 비트코인 ETF 선점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 대표는 “전통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이미 다른 자산들은 다 성숙돼 있는데 이런 성장군에 속하는 새로운 에셋이 시장에 들어온 상황을 매우 반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레버리지, 인버스, 인컴 등 다양한 형태로 비트코인 ETF가 진화하면서 시장이 굉장히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집요하게 뛰어든 것도 이제 막 커지는 비트코인 시장을 잡아 퍼스트무버가 되려는 것”이라고 짚었다.
◇SEC 깐깐 심사 통과한 비트코인, 제도화 의미 커
김 대표는 이번 승인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SEC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SEC가 불승인하지 못할 정도로 비트코인이 제도적으로 성숙해졌다는 걸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법원 판결에 따라 SEC는 요건을 갖춘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해선 승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SEC가 가상자산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SEC는 2021년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이 제출한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을 반려했다. 이에 불복한 그레이스케일이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SEC가 선물ETF는 승인하면서 같은 자산을 기초로 하는 현물 ETF를 불승인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며 그레이스케일 손을 들어줬다. 법원 판결은 지난 10년 동안 모든 비트코인 현물 ETF를 불허한 SEC가 11건의 무더기 승인을 내리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김 대표는 “SEC가 비트코인 ETF를 승인했다는 것은 정밀 검증을 마쳤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이어 “비트코인의 거래 투명성이 높아지고 유동성도 풍부해지면서 시장 여건이 많이 개선됐고 인가받은 가상자산 거래소와 커스터디 업체가 존재하는 등 제도적으로도 성숙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SEC도 불승인할 명분이 없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개리 겐슬러 SEC 위원장 역시 10일(현지시간) 성명서를 통해 “비트코인 현물 ETF도 발행자와 거래소가 미국 증권법,거래소법 및 위원회의 규칙을 준수한 만큼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승인 배경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