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 18분, 이번엔 32분…취임사, 뭐가 달라졌나[트럼프 취임]

이소현 기자I 2025.01.21 17:18:55

그땐 1433자, 이번엔 2888자로 두배
'美 우선주의' 기조 속 실행계획 언급
화합 강조했던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쇠퇴 시기로 규정, 강경책 선전 집중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백악관에 재입성하게 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는 역대 대통령은 물론 8년 전 자신과 비교해도 다른 모습이었다. 역대 미 대통령들이 선호했던 화합과 통합적 표현을 생략하고 강한 반격과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8년 전 정치 초보로 예상을 뒤엎고 워싱턴에 입성한 아웃사이더의 모습 대신 자신감이 넘치며 원칙과 실행계획을 겸비한 베테랑 정치인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집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 국회의사당에서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 선서를 한 후 이머전시 홀에서 군인들에게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AFP)
◇‘미국 우선주의’…8년 전보다 더 구체적 실행계획

20일(현지시간) 미국 47대 대통령 자리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는 8년 전과 비교해 ‘미국 우선주의’ 기조는 더욱 분명해진 가운데 한발 더 나아가 구체적인 정책을 촉구하는 면이 돋보였다.

8년 전 취임 연설은 ‘미국 물건을 사고, 미국에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간단한 원칙 2개를 언급하며 18분에 그쳤다. 올해 취임 연설은 미국 우선주의와 관련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담아 32분으로 대폭 늘었다.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자신의 해결책을 분야별로 꼼꼼하게 제시하는 데 할애했는데 남부 국경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불법 체류 외국인에 대한 대규모 추방을 개시하고, 외국의 범죄 카르텔을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겠다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2017년 연설은 1433자로 미국의 현대 취임식 역사상 가장 짧았으나 올해는 2888자로 그 두 배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의사당 내 중앙홀(로툰다)에서 진행한 취임 연설에 그치지 않고 취임식 장면을 생중계했던 의사당 내의 노예해방홀을 찾아 또 30여분간 연설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와 함께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취임 기념 총사령관 무도회에 참석하며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사진=로이터)
◇통합 강조한 역대 대통령들과 달라…본인 영웅화

취임사를 관통하는 메시지 기조는 역대 미 대통령들과 확연히 다르다. 역대 대통령들이 통합을 강조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재건과 강한 지도력을 통한 변화에 중점을 뒀다.

4년 전 바이든 전 대통령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위기, 1·6 의사당 폭동 이후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 존중하며 협력해야 한다”는 통합의 메시지를 내놨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취임 연설에서 미국이 지난 4년간 약해졌다고 주장하며 “우리는 다시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미국을 되찾겠다는 강한 변화를 강조했다.

대외 정책에서도 역대 미 대통령들이 글로벌 협력과 동맹을 강화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한 미국 우선주의 기조로 보호무역, 국익 중심의 정책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일례로 멕시코만의 명칭을 아메리카만으로 변경하고,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고도 했다.

과거 존 F. 케네디(1961년), 버락 오바마(2009년) 전 대통령이 대외 정책에서 동맹과 국제 협력을 강조한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더는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강한 대외 정책을 예고했다.

역대 대통령과 문체 차이도 확실했다. 희망과 화합의 메시지를 사용해 포용적인 연설이 주를 이룬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짧고 반복적인 문장을 사용해 직설적인 특유의 화법으로 연설을 이어갔다.

또 역대 대통령들은 ‘우리(We)’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나(I)’에 대한 언급이 더 잦은 모습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취임사에 자신을 ‘250년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탄압받은 대통령’이라고 규정했고 암살의 위기에서 신이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는 등 개인사를 열거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는 악을 물리친 영웅으로 자신을 묘사하는 데 열중했고 명백한 운명에 기대고 있었다”고 논평했다. CNN은 “취임식에서 ‘스트롱맨’ 페르소나와 전능한 대통령 권한에 대한 시각을 바탕으로 힘의 과시를 보여줬다”며 “그의 두 번째 임기가 국내외에서 강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미 의사당에서 조바이든 전 대통령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47대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사진=로이터)
◇과거 정부 면전서 비판…분열 야기 비판

미 주요 언론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는 과거 집회에서 얘기한 것과 비슷한 내용을 되풀이하면서 지지자를 만족하게 하기엔 충분했지만, 통합보다 분열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황금시대를 선언함과 동시에 현재를 미국의 쇠퇴로 규정했기에 취임식에 초청한 바이든 전 대통령과 민주당 인사들을 면전에서 비판한 격이 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는 우리의 훌륭하고 법을 준수하는 미국 국민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지만, 위험한 범죄자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보호하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국경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이에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오직 자신만이 살릴 수 있는 무너져가는 나라의 암울한 모습을 그렸다”며 “그는 취임사에서 대부분의 대통령이 선호하는 고결한 주제나 통합적인 표현을 거의 생략하고, 종종 분열을 일으키는 일련의 정책을 개략적으로 설명했다”고 짚었다. 로이터 통신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평화주의자이자 통합주의자로 묘사하려 했지만, 그의 연설은 과거 대통령들의 연설과 달리 종종 극단적인 당파적 성향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에 4년 전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평화적인 정권이양을 약속하며 존중을 보여주려 애썼던 바이든 전 대통령과 민주당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중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식 날짜가 흑인 인권 운동을 기리는 마틴 루터킹 주니어 기념일과 겹친 것을 의식해 “우리는 그의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고 말하자 뒷좌석에 있던 바이든 전 대통령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또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연설에서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개명을 언급하자 힐러리 클리턴 전 국무장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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