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폴에 아직도 10만명 갇혀…러 방해로 탈출 요원

방성훈 기자I 2022.04.22 18:03:51

마리우폴 시장, 러에 "남은 10만명 탈출하게 해달라"
21일 마리우폴 탈출 79명…우크라 부총리 "미안하다"
러, 민간인 대피 합의해 놓고 집결지 인근에 포격
식량·의약품 등 부족…인도주의적 위기 우려 고조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에 갇힌 민간인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지난 13일(현지시간) 세베르도네츠크의 벙커에 대피해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사진=AFP)


22일(현지시간) 가디언, BBC방송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이날 우크라니아 국영방송에 출연해 “마리우폴에 아직 10만명의 시민들이 남아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모든 시민이 대피하는 것”이라며 러시아에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20일 러시아와 마리우폴에서 여성과 어린이, 노인을 대피시키기 위한 인도주의 통로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4대의 버스만 도시를 빠져나갔고 대피 인원은 100명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와 관련, 이리나 베레시추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전날 밤 텔레그램을 통해 마리우폴에 남은 10만명 가운데 최소 5만명이 탈출하길 원하고 있다면서 “오늘 대피하지 못한 마리우폴 시민들에게 사과한다. 집결지 인근에서 포격이 시작돼 대피 통로가 폐쇄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최소한의 어떤 기회라도 있는 한 당국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며 “조금만 더 견뎌달라”고 당부했다.

베레시추크 부총리는 또 민간인 대피가 제한되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방해 때문이라고 강력 비난했다. 그는 “민간인을 철수시키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군이 합의를 깨고 있다”며 전날에도 “최소 5000명이 대피 통로를 이용할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79명뿐이었다. 이것이 러시아가 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시민들이 21일(현지시간) 피란버스를 타고 자포리자로 대피한 뒤 친지들과 재회하고 있다. (사진=AFP)


외신들은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을 사실상 점령하면서 남아 있는 마리우폴 시민들이 생명에 위협을 느낄 수준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달 초 인도주의 물자를 전달하기 위한 차량들이 러시아군에 의해 차단돼 끊긴 뒤로 식량과 의약품 등 구호물품이 점차 부족해지고 있어서다.

전쟁 전 마리우폴에는 약 43만명이 거주했다. 지금은 정확하게 몇 명이 남아있는지 불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0만명 가량이 여전히 대피하지 못하고 도시에 갇혀 있다고 보고 있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만~20만명으로 추정했다.

마지막 남은 우크라이나 병력은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갇혔다. 이 제철소에는 우크라이나군 2500명과 그 일가족 및 민간인 1000명이 대피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날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파리 한 마리 지나가지 못하도록 하라”며 ‘완전 봉쇄’를 명령했다.

제철소에 갇힌 세르히 볼리나 우크라이나 소령은 지난 19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위성전화 인터뷰에서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500명이 부상을 당한 상태로 지하실에 갇혀 있다. 하지만 약이 없다. 매우 비극적이고 위험한 상황”이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안전한 대피를 보장해달라고 호소했다.

마리우폴은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돈바스)와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름반도를 연결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 때문에 침공 초반부터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아 왔고, 도시의 90%가 파괴됐다. 탈출에 성공한 한 시민은 WSJ에 “과거 식당, 커피숍, 미용실 등이 있던 자리에는 (폭격으로 인한) 분화구만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민간인 사망자 수는 최소 1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다. 앞서 보이쳰코 시장은 지난 11일 “러시아군 공격에 따른 사망자 수는 집계하고 있지만, 개별적인 사망 사례는 별도로 확인하기 어려워 전체 사망자 수가 2만명을 넘어설 수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인근 마을에 만들어진 집단 매장지 위성 사진. (사진=막사 테크놀로지)


한편 이날 마리우폴에서는 러시아군이 민간인 학살 은폐를 시도한 또다른 정황이 포착됐다.

마리우폴 서쪽으로 약 14㎞ 떨어진 마을 만후시의 공동묘지 근처에서 300여개의 구덩이가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각 구덩이 크기는 가로 180㎝·세로 3m 정도로 집단 매장지로 추정된다. 마리우폴 시의회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군이 이 곳에 적게는 3000명, 많게는 9000명을 묻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보이첸코 시장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인 시신을 저장시설과 냉동고를 갖춘 대형 쇼핑센터로 옮겨 이동식 화장 장비로 불태웠다고 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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