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트립in 설시연 작가] 나무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나무에게 긴 시선이 머무는 계절이다. 나무의 어근은 ‘땅’, ‘흙’이라는 의미의 ‘낟’이다. 자신을 가리키는 ‘나’의 어근도 나무와 같은 ‘낟’이다. 나무를 보고 있으면 나를 떠올리게 되는 계절, 나를 떠올리다 보면 내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소설가 김훈은 ‘숲’이라고 발음할 때면 입 안에서 서늘한 바람이 인다고 했다. ‘숲’이라는 발음은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그래서 숲은 늘 맑고 깊다고도 했다. 부유스름한 가을 안개가 도시 가득 어슬렁거리던 어느 새벽. 깊은 바람이 이는 ‘수-웊’ 여행을 떠난다. 나를 들여다보는 ‘나-무’ 여행을 떠난다.
완만하게 굽이진 숲길을 50분 정도 걷는다. 사박사박 낙엽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경사진 산길을 20분 정도 오른다. 나뭇등걸엔 진초록 이끼가 촘촘히 박혀 수다스럽다. 혹독했던 지난 계절을 기억하듯 단풍나무가 누렇게 오그라든 이파리를 매달고 있다. 발걸음이 헐거워질 때쯤 사람들의 탄성이 들린다. 발걸음이 가벼워지더니 이내 분주해진다. 드디어 목격한다.
순백의 가녀린 것들이 숨 막히게 빼곡하다. 하얀 나무기둥과 까만 옹이 자국이 원근법을 무시한 채 선명하다. 무딘 조각칼로 새긴 양각의 판화를 보든 듯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늘을 향해 곧다. 새파란 하늘엔 우듬지들이 동그랗게 머리를 맞대고 있다. 새파란 캔버스에 점묘화로 노랗게 찍어 놓은 듯 이파리들이 소곤댄다. 시샘하는 바람이 불어 꽃눈개비 되어 날린다. 이 숲에서 영영 길을 잃고 싶다.
자작나무는 불에 탈 때 ‘자작자작’하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혹한을 견디기 위해 기름 성분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과 습기에 강할 뿐 아니라 껍질이 얇게 벗겨져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되었다. 러시아인들은 영적 능력을 지닌 신의 선물이라 여겼고 껍질에 소원을 쓰면 이뤄진다고 믿기도 했다. 나는 학창 시절 처음 만난 자작나무를 기억한다. 미색의 자작나무 위에 그리운 마음을 쓰고 지웠다. 오래도록 변치 않을 우정을 새기고 고백했다. 편지지에 꾹 찍혀있던 상호 ‘날고 싶은 자작나무’다.
하늘의 천사가 꽁꽁 얼어 있는 자작나무를 보았다. 천사는 살며시 내려와 자신의 흰 날개로 나무 기둥을 감싸주었다. 그래서 자작나무는 순백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 동화를 생각하며 숲 속 오솔길을 걷는다. 천사의 날개 같은 나뭇결을 쓸며 감촉을 나눈다. 반달 눈썹 같은 옹이 자국이 참 많다. 높이높이 자라기 위해 스스로 잔가지를 떨어낸 흉터다. 동그란 눈동자를 깜빡일 것 같은 옹이 자국을 쓰다듬는다. 나무도 포식자가 자신의 잎을 먹어 치우는 소리를, 그 진동을 듣고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방어태세로서 반응한다고 한다. 자작나무가 우리에게 어떻게 감응했을지 궁금하다면 떠나보자.
자신에게 긴 시선이 머무는 계절을 지나고 있다. 내 안의 것을 들여다보고 싶은 계절이라는 뜻일 것이다. 나답게 깊어가고 있는지 자꾸 흔들리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자작나무의 배웅이 오랜 친구마냥 따뜻하다. 자작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