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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전 참사는 쿠바 전문가로, 2013년 파나마에 억류되었던 북한 선박 청천강호의 억류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김정은 표창장’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1999년 외무성에 입부했으며, 2019년 4월부터 망명 직전까지 쿠바 주재 정치 담당 참사를 지냈다. 2011년 9월~2016년 1월, 2019년 4월~2023년 11월까지 쿠바에서만 총 9년을 근무했다.
그가 탈북한 시점은 한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가 이뤄지기 3개월전으로 한국과 쿠바의 수교협상이 그의 탈북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리 전 참사가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마지막으로 수행한 가장 중요한 업무는 한국과 쿠바 사이의 수교 저지 활동이었다”며 “평양의 지시를 집행해 보려고 애를 써보았으나 쿠바의 마음은 이미 한국에 와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고 리 전 참사가 업무상에 어려움을 겪었음을 돌려 말했다.
리 전 참사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탈북 이유에 대해 “작년에 경추 손상에 의한 신경 손상증을 앓게 돼 멕시코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외무성에 제기했는데 24시간도 안 돼 불허한다는 전보가 떨어졌다”며 “그때 격분해 ‘북한을 떠나려는 내 생각은 옳았다’고 확신했다. 부모님, 장인·장모님이 다 돌아가신 것도 결심에 일조했다”고 탈북의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2019년 8월 쿠바에 북한 식당을 내려고 평양에 가자 외무성 대표부지도과 부국장이 적잖은 뇌물을 요구했다”며 “자금 여유가 부족해 ‘후에 보자’는 식으로 미뤘더니 앙심을 품고 나를 소환하려고 시도했다”고 외무성 내 불평등한 평가도 탈북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한국보다 더 통일을 갈망한다고 밝혔다. 리 전 참사는 “북한은 못살기 때문에 간부든 일반 주민이든 내 자식의 미래를 걱정할 때 뭔가 좀 더 나은 삶이 돼야 하는데 답은 통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대기업이 (북한에) 들어와서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면 최소한 지금같이 거지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해 리 전 참사는 “북한 주민들의 통일 갈망을 차단하려는 데 있다고 본다. 한류는 아무리 강한 통제와 처벌에도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며 “최소 선대는 통일을 제1국사로 책정하고 통일 노선이나 남북 대화 등도 계속 마련하면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희망만은 감히 뺏지 못했는데 김정은은 이마저 무참히 뺏어버렸다”고 북한 정권을 비판했다.
김 위원장의 딸인 주애의 후계구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리 전 참사는 “절대권위나 숭배를 받으려면 신비함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노출시키면 숭배함이 있겠냐”며 “처음 김주애를 공개할 때는 신기했지만 열병식 같은 국가공개행사까지 데리고 다니니 거부감이 들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