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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원장이 지난 1월 말 올해 총선에서 종로 출마 뜻을 밝히고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직을 맡겠다고 했을 때 민주당 안팎에선 그가 대선에 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서울 종로는 대통령만 세 명(윤보선, 노무현, 이명박)에 내각제 총리(장면)까지 배출한 ‘정치 1번지’로 불리는데다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까지 품고 있는 곳으로 그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황 대표가 장고 끝에 종로 출마를 결심한 반면 이 위원장은 일찌감치 자신의 출마지로 서울 종로를 낙점하고 승부수를 던졌다. 그 최종 목적지가 청와대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이 위원장과 황 대표가 오랫동안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선두를 다퉈온 만큼 이번 종로 선거는 대선 전초전 성격을 띠었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계속 1위를 달리며 확인된 대중적 지지도에 더해 당내에서도 공고한 입지를 굳히며 대선행 고속도로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게 됐다. 고향에서만 4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전남지사를 지낸 데서 비롯한 지역적 한계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전남 영광 출신인 이 위원장은 직전에 민주화 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 총리를 지내긴 했지만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자신의 고향인 전남 함평군·영광군에 출마해 당선된 이래 이곳에서 내리 4선을 지낸 후 지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전남지사에 당선됐다. 호남색이 짙었던 이 위원장의 종로 승리는 차기 대권 후보로서 그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 위원장은 이번 총선 정국에서도 황 대표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다. 줄곧 여론조사에서 황 대표에 오차 범위 밖의 우세를 이어온 이 위원장은 소위 대선급 일정을 소화했다.
민주당 지역구 후보들을 위한 지원 유세와 종로 표심 잡기를 병행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자당 후보 지원 유세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이해찬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의 부재가 무색할 정도로 사실상 원톱 체제로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아울러 당 후보 40여 명의 후원회장도 맡아 당내 세력화에도 고삐를 죄었다. 결과적으로 이 위원장은 자신의 지역구 뿐만 아니라 당의 총선 승리까지 이끌면서 그의 대선가도는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당장 차기 당권이 그의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
◇黃, 정치 생명 끝…통합당 당권 두고 혈투 예상
반면 자신의 63번째 생일에 뼈아픈 패배를 당한 황 대표는 통합당의 총선 패배까지 겹치면서 사실상 정계 은퇴수순을 밟을 처지에 놓였다. 황 대표는 지난 10일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큰절을 하며 “제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황 대표 입장에서 이번 종로 출마는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의 배수진이었다. 승리 시 단숨에 가장 유력한 보수진영 대권 후보로서 대세론을 굳히는 게 가능했다.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공천 파동을 둘러싼 ‘리더십 위기’는 물론 ‘정치 신인’·‘원외 대표’의 꼬리표도 한꺼번에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패배는 곧 정치생명의 끝을 의미했다. 설상가상 황 대표는 본인의 패배는 물론 당의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근 ‘차명진 망언’으로 불거진 공천 책임론이 선거 패배 책임론으로 귀결될 것임은 불보듯 훤한 일이다. 그러잖아도 취약한 당내 세력 탓에 정치적 존재감도 급속히 쇠퇴할 가능성이 높다. 통합당은 당장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고려할 상황이 됐고 당권을 두고 혈투가 예상된다.
강력한 경쟁자를 넉다운시킨 이 위원장은 이제 여유롭게,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올라올 새로운 상대를 먼저 본선 라운드에서 기다릴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