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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반도체업계에선 이번 정상회담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과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우리 기업의 탈중 규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적기라고 보고 있다. 가장 시급한 현안은 미국 보조금 독소조항 완화다. 앞서 미 상무부는 반도체 기업의 자국 내 투자를 장려하고자 대규모 지원 정책을 발표, 보조금 지원 요건으로 초과이익 공유 및 미국 내 반도체 인력양성 등 요구 사항 등을 이행해야 한다는 이른바 독소조항을 내걸었다. 더 나아가 기업들에 수율(생산품 중 합격품 비율) 등 기업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 상태다.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만큼 삼성전자와 대만 TSMC의 경우 보조금 신청이 불가피하다. SK하이닉스도 보조금 신청 의사를 공식화했다. TSMC는 최근 미국과의 협상을 시작했으며, 지원금의 조건으로 내건 몇몇 조항들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도 물밑협상뿐 아니라 한미정상회담 테이블에 안건으로 올려 독소조항 완화를 위한 추가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미국의 과도한 정보 요청이나 중국 비즈니스에 대한 제한, 초과 이윤 환수 등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상황을 설명하고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올 10월 종료되는 미 정부의 대중 수출 규제 유예기간을 늘리는 데에도 주력해야 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함으로써 중국 내에 18㎚(나노미터)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핀펫 로직칩 등 특정기술 수준의 반도체 생산장비는 반입을 금지한 상태다. 중국 내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진행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1년간 통제 조치를 유예하고 있어 이를 연장시켜야 하는 것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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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해야 하는 사안이 산적해 있음에도 우리 기업에 대한 반도체 사업 리스크는 점차 늘어나는 형국이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이 자사 기업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대한 대중 수출을 금지할 경우, 마이크론 수출분의 공백이 생기더라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중국 내 부족분을 메우지 않도록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
미국 측은 이번 회담에서 해당 내용을 우리나라에 다시 한번 언급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중국 내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조치를 유예해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만큼 미국 측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 게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에서도 주요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 중국 입장을 신경쓰지 않을 수도 없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제재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기업인 만큼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어떻게 현안을 해결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장비 수출 통제 등이 미국에 달려있어 우리 기업으로선 미국과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지만 동맹국인 우리나라 기업을 너무 옥죄면 곤란하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가 이번을 시작으로 앞으로 협조하기 힘든 수준의 요청을 추가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정부와 업계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나서 미국 반도체 패권주의 속 K반도체를 고수할 전략을 내놓기에 분주하다. 양향자 의원은 오는 26일 국회에서 ‘미국 반도체 유일주의, 민관학 공동대응 토론회’를 열어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의 전략과 정책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양 의원은 “자국 유일주의와 같은 미국의 보조금 지원정책은 원칙적으로 맞지 않으며, (정부는) 이번 회담에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을 갖고 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규제 등 해결이 쉽진 않지만 글로벌 공급망에 미국도 영향을 받고 있기에 우리나라 반도체사업을 어려운 상황으로 가게 하진 않을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아직 메모리 시장지배력이 있기에 함부로 할 순 없으며, 이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의 기업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산업부는 “반도체를 둘러싼 글로벌 통상환경에 적극 대응해 우리 산업의 성장 기회로 만들어가겠다”며 “현지 생산을 유도하는 자국중심주의에 대해 산업계, 연구계, 학계와 지속 소통하며 협상에 임해 산업 기반을 굳건하게 다지고 우리 기업과 산업에 미치는 불확실성 부담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