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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전 차장은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14명의 전·현직 법관 중 1호 피고인이다. 2018년 11월 기소돼 3년 3개월째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관련 재판 중 속도가 가장 더딘 상황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사건을 제외하고 임 전 차장에 비해 4개월 늦게 기소된 10명의 전·현직 법관 중 5명은 대법원에서 이미 무죄가 확정됐고, 다른 5명도 1·2심 선고가 마무리된 후 대법 선고만 남겨둔 것과 대조적이다.
임 전 차장 재판이 지체된 배경엔 방대한 사건 내용과 더불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재판장 윤종섭)와의 갈등이 있다. 임 전 차장은 2019년 6월 “재판부가 유죄 심증을 드러내며 불공정한 진행을 했다”며 기피 신청을 냈다. 신청이 기각되자 항고·재항고까지 해 재판은 7개월가량 중단됐다.
◇‘사법농단 단죄 발언’ 의혹으로 재판부-임종헌 갈등 정점
이밖에도 재판 진행을 둘러싸고도 여러 차례 충돌하기도 했던 임 전 차장과 재판부와의 갈등은 지난해초 윤종섭 부장판사의 ‘사법농단 단죄’ 발언 의혹이 제기되며 확산일로를 겪었다. 윤 부장판사가 사법농단 사태가 불거지던 2017년 10월 김명수 대법원장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사법농단 연루자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의혹이다. 이는 지난해 2월 한 언론을 통해 처음 보도됐다.
임 전 차장은 “해당 발언이 사실일 경우 판사가 유죄 심증을 갖고 재판을 진행하게 되는 만큼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부에 법원행정처 등에 대한 사실조회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임 전 차장은 지난해 8월 또다시 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을 했다. 재판부는 이를 기각하고 재판을 강행했지만 서울고법은 지난해 12월 항고 사건에서 1심 기각 결정을 취소하고 서울중앙지법 다른 형사재판부에서 기피신청을 심리하도록 했다.
결국 윤 부장판사 등 재판부는 기피신청에 더해 전무후무한 서울중앙지법 6년 연속 근무라는 법원 내부의 거센 반발 등으로 인해 올해 2월 인사를 통해 다른 법원으로 전보됐다. 새롭게 재판부를 구성할 3인의 법관들은 오는 21일자로 형사합의36부에 배치된다.
◇형사소송법·규칙상 피고인 비동의시 증거조사 다시해야
갈등을 겪던 재판부가 변경됨에 따라 그동안 비협조적이던 임 전 차장의 재판 태도가 바뀔지도 관심이다. 우선적으로 간소한 공판 갱신 절차가 진행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형사소송법은 재판부가 변경되는 경우 공판절차를 갱신하도록 하고 있다. 형사소송규칙은 검사와 피고인·변호인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 한해 증거기록 제시 등의 방법으로 갱신 절차를 갈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공소사실 낭독, 법원 조서에 대한 추가 증거조사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재판부가 교체된 양 전 대법원 재판의 경우 간소절차 대신 그동안의 증인신문 등 증거조사 녹음파일을 일일이 재생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공판 갱신에만 7개월이 소요됐다.
법원 안팎에선 임 전 차장이 간소절차에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지방법원 소속 판사는 “재판 지연 혹은 충실한 방어권 행사 중 어느 것이 목적이든 임 전 차장은 일단 재판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는 모습”이라며 “간소절차에 쉽사리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임 전 차장이 공정성에 강한 의심을 품던 재판부가 교체된 만큼 남은 증거조사 절차는 이전에 비해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무한정으로 재판을 끌 수도 없는 만큼 새 재판부의 심리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