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한승구 인턴 기자] 27살 취업준비생 박태민씨(27)는 2023년 공무원 시험이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작년에 비해 올해 공무원 채용 인원이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작년 공채 145명을 뽑은 충남지역 소방공무원은 올해는 단 4명만 뽑는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데일리 스냅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작년에도 아쉽게 탈락했는데 이번 시험은 도저히 자신이 없다”면서 “이번에 떨어지면 다른 취업 자리를 알아봐야 하는데 어떻게 준비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올해 발표한 지방 공공부문 일자리 채용 규모가 크게 줄어들면서 아예 공무원 준비를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지방에는 취업 활동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탓에 지방 공무원을 포기한 이후 청년들이 취업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일 울산광역시는 올해 지방 공무원을 159명 뽑는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575명보다 416명(72%) 감소한 수치다. 울산시 채용 규모가 100명대로 떨어진 건 11년 만의 일이다. 국가직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스냅타임이 소방공무원 채용계획 공고를 조사한 결과 전국적으로 채용인원이 줄었지만 지방이 더 가파른 감소세를 보였다. 올해 상반기 소방공무원 채용 인원은 1560명이다. 작년 2254명 보다 40% 감소한 수치다. 지역별로 채용인원을 따져본 결과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은 전년대비 36%, 지방은 61% 감소했다.
정부는 앞으로 5년간 공무원을 늘리지 않고 매년 1%씩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박씨와 같이 지방에 거주하는 취준생에게 채용 인원 감소는 치명적이다. 지방은 원래 인력이 적은 탓에 채용 인원을 줄이면 아예 뽑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종시는 작년 소방공무원 15명을 공개채용 했지만 올해는 아예 뽑지 않았다. 세종시처럼 올해 채용 공고가 나지 않은 지역의 취준생은 내년을 기약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부족한 지방 인프라...선택지는 서울뿐
박씨는 인터뷰에서 공무원 포기한다면 무엇이 가장 걱정되냐는 질문에 ‘취업 공백기’라고 답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도중에 시험을 포기하면 준비한 기간은 그대로 공백기가 된다. 시험 특성상 다른 직무 경험을 쌓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씨는 “(시험을 붙지 못하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2년이 그냥 사라진 것 같아 허무하다”며 “다른 취업 준비를 해도 이곳에서는 스펙을 쌓기 어렵기 때문에 서울로 갈지 고민 중”이라고 대답했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대외활동, 스터디 등의 취업활동은 서울권이 대다수다. 특정 대외활동은 기업체와 연계하여 채용 시 서류 면제 등의 혜택도 있지만 지방에 사는 취준생은 비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원 자격이 제한되곤 한다. 지난 2월 9일 링커리어 대외활동을 지역별로 검색한 결과 수도권은 평균 64건의 대외활동이 있었지만 나머지 지역은 평균 16건에 그쳤다.
지방엔 실무 경험을 할 수 있는 회사도 부족하다. 최근 대졸 신입 채용방식으로 ‘수시 채용’이 유행하면서 실무 경험을 할 수 있는 인턴은 무엇보다 중요한 스펙이 됐다. 금같이 귀하다는 의미로 ‘금턴’이라 불릴 정도다. 하지만 인턴은 주로 서울에서 할 수 있다. 스타트업이나 회사 본사 등이 인프라가 구축이 잘 된 서울에 위치해서다. 스냅타임에서 사람인 2월 인턴 채용공고를 검색한 결과 서울 지역 인턴 공고는 2234건(10일 기준)이 있었다. 지방 지역의 인턴 공고는 평균 62건이었다.
지자체 청년 정책 실효성 높여야
이런 상황에 지자체는 각종 일자리 지원 정책을 통해 ‘청년 모시기’에 한창이지만 청년 인구 유출을 막기에 부족하다는 평가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스냅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궁극적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일자리의 양과 질의 격차가 너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자체 정책은 청년의 수도권으로의 유출을 막을 만한 재정지원 규모가 작았거나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는 등 지원 방식이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전시는 올해 청년 일자리 확대 및 역량강화를 위해 31개 사업에 177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과 졸업생 대상 취업 선호 지역에서 수도권은 46.5%인데 반해 충청권은 15%에 그쳤다. 광주시는 지난해 1852억 예산을 투입해 청년 지원에 나섰다. 일자리·주거·고육 등 5대 분야에서 84개의 사업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매년 1만명의 청년들이 광주시를 떠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청년 일자리 정책은 실제 직무 경험을 쌓고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업무를 제공해야 한다”며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단기 일자리를 중심으로 일자리 정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청년들이 지역에 정주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그에 맞춰 일자리 정책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