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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잃고 집 잃고…여진 두려움 떨며 길바닥서 쪽잠

방성훈 기자I 2023.09.11 16:22:02

모로코 120년만의 강진①
계속되는 여진·골든타임 성큼
사망 최소 122명·부상 2421명…사상자 더 늘어날듯
정부 늑장대응에 주민들 분노…"국제지원도 받아야"
산악지대 피해 집중·건물 노후화 등이 피해 키워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모로코의 역사도시 마라케시 인근에 위치한 마을 타페가그테. 10일(현지시간) 오후 한 여성이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함께 서 있던 또 다른 여성은 돌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들의 시선 끝엔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방금 전에 발견된 10세 소녀 칼리파의 시신이 놓여 있다.

200명이 거주하던 이 작은 마을에 이제 남은 주민은 얼마 없다. 지난 8일 밤에 발생한 6.8 규모의 강진으로 마을 주민 90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실종자도 얼마나 발생했는지 불분명하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도 대부분이 큰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다치지 않고 살아남은 몇 안되는 주민들은 마을 곳곳에서 맨손으로 건물 잔해를 헤치며 가족 이름을 부르짖는다. 사방에서 울음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마을 주민 압두 라흐만은 한 때 집이 있던 곳을 가리키며 “아내와 세 아들을 잃었다. 어제 그들을 묻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하산은 “가족들이 아직도 (무너진 건물) 잔해에 묻혀 있다. 그들은 도망칠 기회조차 없었다”고 했다.

10일(현지시간) 모로코 중부 아미즈미즈 인근 이미 은탈라 마을에서 건물 잔해에서 꺼내지는 가족의 시신을 보며 한 여성이 통곡하고 있다.(사진=AFP)


◇사망자 최소 2122명…다가오는 골든타임 “시간과의 싸움”

모로코에서 6.8의 강진이 일어난 지 사흘째를 맞이한 이날 각 피해 지역에선 필사의 생존자 구조·수색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인명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으로 여겨지는 72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피해를 크게 입은 지역 대부분이 구조대의 접근이 어려운 산간 지역인 데다, 규모 3.9~4.5 수준의 여진이 지속 발생하고 있어서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11일 밤 이후엔 생존율이 5~10%로 떨어진다”며 “이제부턴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조 잉글리시 유니세프 유엔 아동기금 대변인도 “국제적 지원과 연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모로코 내무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는 최소 2122명, 부상자는 2421명이다. 진앙이 위치한 알하우즈 주에서 1351명이 사망해 가장 피해가 컸다. 하지만 이는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은 수치다. 캐롤라인 홀트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운영 책임자는 “(중환자 등) 부상 정도와 사망자 및 생존자 수 등에 대해서는 아직 전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다”며 인명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재해로 사망자가 1000∼1만명 발생할 확률이 35%로 가장 높다고 봤다. 1만~10만명에 이를 가능성은 21%, 10만명 이상일 가능성은 6%로 각각 추정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 지진으로 30만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고 발표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상황도 심각하다. 건물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잔해에 깔리지 않아 운이 좋았다는 사람부터 집과 가족을 모두 잃어 통곡하는 사람까지 서로 위로하며 슬픔을 견뎌내고 있지만, 먹을 것도 잘 곳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의료 상황도 열악해 부상자에 대한 치료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생존자 대부분이 여진의 두려움에 떨며 야외에서 쪽잠을 자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지진이 발생한지 사흘째로 접어들었지만 구호물자는 커녕 구조대조차 구경하지 못한 주민들도 상당하다. 이들 사이에선 정부의 늑장대응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한 생존자는 “알라신께서 이것(지진)을 우리에게 가져오셨지만, (그와 별개로) 지금 당장 우리는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그들은 너무 늦는다. 최대한 빨리 도와줘야 하는 데도 너무나도 늦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자존심 때문에 거부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10일(현지시간) 모로코 마라케시 인근 마을 타페가그테에서 한 남성이 맨손으로 건물 잔해를 치우고 있다.(사진=AFP)


◇산악지대 피해 집중·건물 노후화 등이 피해 키워

모로코는 지질학적으로 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 사이에 위치해 북부 지역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피해가 특히 컸던 이유는 지진 자체가 120년 만에 가장 강력한 6.8 규모의 강진인 데다, 피해지역이 아틀라스 산맥지역 고지대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들은 산사태로 피해 지역으로 향하는 도로가 끊겨 구급차 통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부분이 잠든 밤 11시에 지진이 발생한 점도 인명피해가 늘어난 요인으로 꼽혔다. 특히 지난 2월 튀르키예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건물이 노후화한 데다, 지진에 매우 취약한 진흙 벽돌, 돌, 나무 등으로 지어져 피해가 더 컸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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