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선상원 기자] 시행 시기가 1년이나 남은 김영란법의 개정안이 제출됐다. 지난 3월 제정 당시부터 과잉입법 위헌소지 시비로 국회 본회의 처리에 우여곡절을 겪었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한 논란이 다시 확대되는 모양새다.
김종태 의원(새누리당·경북 상주)는 지난 17일 김영란법의 수수금지 금품에서 농축수산물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수수금지 금품에 해당하지 않는 항목에,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 의례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선물 등으로 농수산물 품질관리법에 따른 농수산물과 농수산가공품을 추가했다.
김영란법 8조는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시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 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으로서 대통령령(시행령)으로 정하는 가액 범위 안의 금품은 예외다. 시행령을 준비중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선물가액으로 5만~10만원 정도를 검토중이다.
◇농가 피해 4000억원 추산, 김무성 대표도 대책 마련 촉구
문제는 명절 때 선물용품이 5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농협 축산경제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과일의 경우 5만원 이상 상품 매출액이 전체의 50%를 차지했다. 한우선물세트는 5만원 미만 상품이 겨우 2%에 불과했다.
김 의원은 “전체 생산량의 40%가 추석, 설 명절 선물로 소비되는 국내산 농축수산물은 김영란법 시행시 선물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여 농가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개정안 처리를 주장했다.
앞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합리적 김영란법 시행령 제정을 위한 국내 농축산업 대토론회’에 참석해 “김영란법이 좋은 법이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또 다른 피해가 생겨서는 안된다”며 “명절 때 선물 대상에서 우리나라 농축수산물이 제외돼 피해가 가지 않도록 여야가 잘 상의해보겠다”고 말했다.
김영란법 적용대상에서 농축산물을 제외해야 한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김영란법이나 시행령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인 발언인 것만은 분명하다.
야당도 가세했다. 신정훈 의원(새정치민주연합·전남 나주 화순)은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김영란법 시행령이 5만원 이하의 농축산품만 선물로 인정한다면 농업인들의 매출감소가 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김영란법 시행에 있어서 농축산물 예외조항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민 법사위원장 “민간인 제외 방향 개정”… 정무위 여야 간사는 부정적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이 위원장은 김영란법 적용대상을 너무 넓혀 놓아 시행시 혼란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당초 취지대로 고위공직자에 한정하는 방향으로 다시 개정해자고 했다.
이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김영란법은 권력형 부정부패를 뿌리 뽑자는 취지였는데, 대상을 고위 공직자에서 하위직 공무원까지 넓히더니 민간인인 사립학교 임직원과 언론인도 포함시켰다”며 “김영란법은 과거에 죄가 되지 않던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 형법이기 때문에 대상을 최소화하고 처벌 규정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2013년 5월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었다. 법률안은 적용대상을 공무원과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 공무수행사인으로 한정했다.
정작 개정안을 심사하게 될 국회 정무위는 부정적이다. 특히 야당은 법의 취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야당 간사인 김기식 의원은 19일 한 방송사에 출연해 “농축수산물 중 수십만원이 넘는 한우나 전복, 굴비 등이 있다. 그런 걸 예외로 할 경우, 과연 다른 분야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며 “개정안은 정무위 소관 상임위에서 다뤄질텐데 저는 전혀 법을 통과시켜줄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 법은 19대 국회 안에 통과될 가능성은 없다. 정부가 시행령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시행을 해본 후에야 법 개정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당도 개정안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여당 간사인 김용태 의원은 이데일리와 통화에서 “농축산물을 배제하면 원예는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을 빼면 저것도 빼줘야 하는데, 품목 하나를 배제하는 것은 법체계에 맞지 않다”며 “권익위 시행령이 나오고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 결정이 나온 다음에 국민들간에 ‘안되겠다. 합리적으로 어떻게 조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법 개정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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