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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의 1심 재판부가 검찰에 양 전 원장 공소장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언급된 내용 중 일부 중복되는 부분을 수정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16일 검찰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박남천)는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에서 양 전 원장의 혐의와 박 전 대통령이 연결될 부분 가운데 중복되는 표현이나 장황한 상황 설명 일부에 대한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달 25일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에 대해 ‘공소장일본주의(一本主義)’를 어긴 부분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검사가 기소할 때 원칙적으로 공소장 하나만을 제출해야 하고 재판부가 예단을 갖게 할 수 있는 기타 서류 등을 첨부·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재판부는 당시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떠나 검찰의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며 “재판부가 보기에도 최초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을 그대로 두고서 재판하기에는 부적절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이유를 밝혔다.
양 전 원장의 공소장은 총 296쪽에 달한다. 이 중 재판부가 검찰에 수정·삭제를 권고한 부분은 박 전 대통령 관련 부분을 포함해 공소장 34쪽에 걸친 34군데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이 청와대 등을 상대로 상고법원 도입 및 해외 법관파견 등 조직의 이익을 얻고자 재판 개입을 계획 및 실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 특히 박 전 대통령 관련 부분은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혐의인 ‘일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과 관련한 부분이 대다수다.
대법원은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일본기업들이 재상고하자 당시 박근혜 정부는 ‘조기에 선고되지 않도록 해주고, 정부 의견 개진 기회를 제공해달라’는 취지를 법원행정처에 수 차례 전달했다.
이와 관련, 공소장에 따르면 2015년 12월 박 전 대통령은 외교부에 ‘망신 안 되도록, 세계 속의 한국을 유념하여 국격이 손상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처리하라’는 의견서 제출을 지시했다. 재판부는 이 같이 공소장에서 박 전 대통령이 언급되는 내용 중 중복되는 부분을 수정 또는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이외에도 재판부는 2013년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김기춘 비서실장 공관으로 찾아가 강제징용 사건 재판을 논의했다는 부분 등도 일부 취지만을 짧게 서술하고 구체적 사실 관계는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모두 판사에게 ‘예단’을 가지게 할 수도 있는 표현이라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재판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일부를 수정·삭제했다. 검찰은 법원의 공소장 변경 요구가 별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장의 일부 표현이 달라진다고 해서 혐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법원의 공소장 지적은 공소장일본주의 위반 논란으로 재판이 지체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의중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