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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지금 다들 좀 거짓말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임시 응급의료소를 본 적이 없다”며 “긴급통제단에 가서 도착 사실을 알렸을 때 임시 응급의료소가 어디 있는지 어느 누구도 제게 알려주지 않았고 그 상황에서 저희는 저희가 알아서 구급이랑 상황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느 누구한테 지시도 받은 적이 없었고 저희 팀들이 알아서, 그리고 한양대 DMAT 팀 만나서 현장에서 두 팀이 알아서 진행하게 됐던 사실이고 그 당시까지 계속 길거리에서 CPR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희 팀들도 거기 CPR에 동참해서 기관 삽관이라든지 IV 라인을 잡고 진행하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참사 당시 경험했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의료 물품이 제때 공급되지 않은 것’을 거듭 지적한 최 교수는 “현장 응급 소장이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다”며 “도착했을 때는 현장에 대한 통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분류, 처치, 이송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팩트로 얘기하자면 사실 저는 현장에서 응급 의료소를 본 적이 없다”며 “누군가를 치료하기 위한 물건들을 달라고 소리쳤지만 어느 누구도 저희한테 의료 물품을 주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에서 뒤늦게 서울대병원에서 재난 트럭이 도착했고 저희 병원이랑 한양대 팀이 합세해 현장에서 응급 의료소, 즉 에어텐트를 설치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최 교수는 한 구급대원의 도움으로 CPR했던 환자를 언급하며 “기관 삽관하고 이제 정맥혈 잡고 주사 주고 하는데, 응급실에서 하는 대로 다 진행하고 있는데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보니까 산소통이 없는 것이었다. 그 많은 구급대가 있는데 저희한테 어느 한 분이라도 산소통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소위 말하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그거를 모아서 (공급)했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걸 그 당시에 느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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