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청 연출 신작 연극 ''더 웨일''
동명 영화, 올해 아카데미상 2관왕
배우 백석광, 특수분장으로 열연
구원에 대한 질문, 솔직함의 중요성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대단하다’를 넘어 ‘경이롭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개막한 연극 ‘더 웨일’은 공연 내내 보는 이를 먹먹하게 만든다. 그 중심엔 주인공 찰리가 있다. 찰리 역을 맡은 배우 백석광은 극 중 몸무게 270㎏의 거구로 등장하는 찰리를 표현하기 위해 20㎏에 달하는 특수분장을 하고 매회 무대에 오른다. 160분의 공연 시간 동안 찰리로 분한 백석광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주인공의 기구한 인생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 연극 ‘더 웨일’에서 찰리 역을 맡은 배우 백석광. (사진=서울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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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찰리가 겪는 5일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찰리는 8년 전 가족 대신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했고, 현재는 고도비만 상태로 작은 아파트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생계를 유지해주는 것은 온라인 작문 강의.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은 찰리에게 유일한 친구는 간호사 리즈(전성민 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찰리는 오랫동안 소원했던 딸 엘리(탁민지 분)와의 관계 회복에 나선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된다.
미국 극작가 사무엘 D. 헌터의 희곡을 연극 ‘그을린 사랑’, ‘와이프’ 등으로 잘 알려진 신유청 연출이 무대로 옮겼다. 원작 희곡은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동명 영화로 국내에 먼저 소개됐다. 배우 브랜든 프레이저가 주연을 맡은 영화 ‘더 웨일’은 지난 3월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개 부문(남우주연상, 분장상)을 수상했다.
신유청 연출 특유의 심플한 무대 구성이 눈에 띈다. 무대는 양쪽으로 긴 사각 프레임 형태 속에 찰리의 집을 꾸며놓았다. 무대 왼편엔 찰리가 일상을 보내는 소파와 TV, 테이블 등이 놓여 있고, 뒤편에는 침대, 오른편엔 식탁과 싱크대가 놓여 있다. 무대 위쪽 벽면은 영상이 비치는 스크린으로 활용해 자막으로 시간의 변화를 표현한다.
| 연극 ‘더 웨일’에서 엘리 역을 맡은 배우 탁민지. (사진=서울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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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브랜든 프레이저의 열연이었다. 브랜든 프레이저가 연기한 찰리는 그 자체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연극에서는 찰리의 고통이 더 배가된다. 무대 위 특수분장을 한 배우가 실제로 겪을 고통이 피부에 와 닿는 듯 보다 가까이 느껴져서다. 인물들의 관계 또한 영화보다 더욱 극적으로 그려진다. 찰리와 리즈, 엘리 외에도 찰리의 전 아내 메리(정수영 분), 그리고 선교를 위해 우연히 찰리의 집을 찾은 토마스(김민호 분)의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들면서 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들의 관계를 관통하는 주제는 ‘구원’, 그리고 ‘솔직함’이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 도우려고 하지만, 도움의 손길은 번번이 빗겨 나간다. 극 후반부에선 찰리가 왜 고도비만이 됐는지, 왜 뒤늦게 엘리와의 회복을 바라게 됐는지 그 이유가 제시된다. 이 또한 ‘구원’과 연결된다.
엘리를 위한 찰리의 선택은 구원을 위한 숭고한 희생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희생이 진짜 구원일지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계속 곱씹어 보게 된다. 종교도, 의학도 찰리에게는 구원이 되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찰리가 온라인 작문 수업에서 강조했던 ‘솔직함’에서 구원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적 연출로 감동을 전한 마지막 장면은 연극에선 무대만의 표현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영화와는 또 다른 연극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더 웨일’은 대학로극장 쿼드가 선보이는 ‘2023 쿼드초이스’ 기획 공연의 일환이다. 오는 30일까지 공연을 이어간다. 오는 10월 6일부터 9일까지는 지난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선정된 원로 연출가 김우옥의 실험극 ‘겹괴기담’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 연극 ‘더 웨일’에서 리즈 역을 맡은 배우 전성민. (사진=서울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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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더 웨일’에서 메리 역을 맡은 배우 정수영. (사진=서울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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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더 웨일’에서 토마스 역을 맡은 배우 김민호. (사진=서울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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