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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데일리가 찾은 인왕산엔 검은 빛이 돌았다. 초록빛을 띠어야 할 4월 초봄의 나무들은 검정, 초록의 삼색을 띠고 있었다. 꼭대기까지 모두 타버린 나무들은 검었고, 불길을 겨우 피한 나무들만 푸른 새 잎사귀를 지켜냈다.
소방당국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 화재를 완전 진압하기 위한 잔불 정리에 집중했다. 소방청은 전날 늦게 화재 진압률이 90%에 달한다고 발표했으나, 건조한 날씨와 바람 탓에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늘에서도 소방헬기가 검게 그을린 산을 향해 물을 뿌렸다. 의용소방대원들은 갈퀴와 삽 등을 이용해 바닥에 남았을지 모를 불씨를 확인했다.
이날 오전 8시께부터 일했다는 의용소방대원 B씨는 “불씨가 흙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라며 “땅을 (갈퀴로) 한 번 긁어줘 불이 2차로 나지 않도록 해주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행히 내일부터는 비가 온다고 하는데 오늘만 잘 넘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장에 나와있던 산림청 관계자 C씨는 “저희는 불이 나면 앞으로 나가서 진압하는 역할을 하는데, 어제 와서 밤새서 불을 껐다”며 “지금은 불이 다시 날 것을 우려해서 중턱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불이 난 인왕산 기차바위 인근의 반대편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주민과 주민센터 관계자들도 분주했다. 홍제3동 주민센터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 9시께 화재 진압 대원들에게 제공할 컵라면과 생수 등을 트럭에 싣고 개미마을 경로당에 왔다. 이 마을 주민들은 경로당에서 끓인 물을 대용량 보온 통에 옮겨 담았다. 홍제3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잔불 처리하고 있는데 (진압 대원들이) 지금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고 해서 보온 통에 물을 담아 트럭으로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다.
전날 인왕중학교 등으로 대피했던 개미마을 주민은 소방당국의 잔불 정리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이정수(82)씨는 “이 동네에서 60년 넘게 살았지만 이런 불은 처음 봤다”면서 “바람이 많이 불고 있어서 잔불이 또 넘어 올 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모(76)씨는 “아침부터 소방헬기가 떴기에 아직도 잔불 정리가 안 됐구나 싶었다”며 “하루빨리 잔불 정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날 인왕산 중턱에서 시작된 불은 25시간여 만인 이날 오후 1시 30분께 완전히 진압됐다. 불은 인왕산 북동쪽 자하 미술관 인근에서 시작된 뒤 바람 길을 따라 인왕산 둘레 여러 곳으로 번졌으며, 축구장 약 21개 면적에 해당하는 산림 15.2헥타르(ha)가량을 태웠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소방은 헬리콥터 15대를 포함해 진화장비 총 207대와 소방, 구청, 경찰, 산림청, 군 인력 등 총 5131명을 투입해 불을 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자연발화와 방화, 실화 등 모든 가능성에 대해 초동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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