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의 서범석 대표는 11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일본 후지필름이 받은 인허가’ 의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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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시장 50%’ 판로 확보
후지필름은 이달초 루닛과의 합작품 ‘CXR-AID’에 대해 일본 정부로부터 의료기기 인허가를 받았다. CXR-AID은 루닛의 폐암 진단 보조 AI 소프트웨어 ‘인사이트 CXR’을 핵심 기술로 하는 분석 솔루션이다. 서 대표는 “후지필름이 가진 여러 자동차들에 부착된 ‘스피커’가 루닛 소프트웨어라고 보면 된다”며 “글로벌 점유율 10%인 후지필름과 손잡고 일본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했다. 후지필름은 일본 엑스레이 시장 점유율 50%인 1위 의료기기 회사다.
‘확보한 판로 규모’에 의미를 두는 건 일본 내 유통이 ‘독점’으로 이뤄져서다. 예컨대 후지필름은 엑스레이 기기에 루닛의 소프트웨어만 넣는 식이다. 서 대표는 “모바일 앱을 잘 만들어도 스마트폰이라는 플랫폼이 없으면 사용자들이 쓸 수 없다”며 “플랫폼 회사들과의 협업이 우리의 사업화 핵심이자 경쟁사와의 큰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재 루닛이 확보한 고객이 전 세계 30개국, 300여곳인데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며 “일본도 빠르게 확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미 루닛은 글로벌 엑스레이 시장 점유율 50%가 넘는 판로를 확보해둔 상태다.
특히 서 대표는 이번 인허가 과정에서 후지필름이 보인 ‘적극성’에 의의를 뒀다. 인허가 핵심이 ‘소프트웨어’인 만큼 루닛이 직접해야 했던 절차를 후지필름이 도맡았다. 서 대표는 “파트너사가 인허가를 대신 받아주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루닛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후지필름은 2019년 5만달러(약 5000만원)를 투자하면서 루닛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투자 전 시장에 나온 엑스레이 제품을 모두 테스트했는데 루닛 제품이 가장 월등했다더라”고 웃었다.
루닛에 따르면 스웨덴 왕립 카롤린스카연구소의 연구결과 루닛 인사이트 알고리즘 민감도(정확도 한 종류)는 82%로 글로벌 경쟁사들 기록(67%)을 크게 웃돌았다. 서 대표는 “적절히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실력이 향상되지 않냐”면서 “타사와 달리 자사는 암이 의심돼 조직검사를 했더니 암이 나왔다, 안나왔다의 다음 단계까지 학습한다. 이를 통해 정확도가 올라갔다”고 했다. 루닛 소속 전문의 11명의 조언으로 갖춘 ‘데이터 확보 가이드라인’이 제품 정확도 향상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가던트헬스, 약 300억원 투자
최근 루닛은 약 3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경사도 맞았다. 미국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가던트헬스가 2011년 설립 후 첫 투자처로 루닛을 낙점했다. 가던트헬스는 약 13조원 기업가치 평가를 받는 나스닥 상장사이자 액체생검 분야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는 회사다. 미국 혈액종양내과 전문의 80% 이상이 가던트헬스 제품을 사용할 정도다.
가던트헬스는 투자와 함께 루닛과 사업 협업도 약속했다. 새 먹거리로 점찍은 ‘조직검사’에서 AI 분석이 필요한 단계에 ‘루닛 스코프(SCOPE)’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루닛 스코프는 암 환자의 조직 슬라이드를 AI로 분석해 면역항암제 치료 효과를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제품이다. 현재 개발 막바지 단계로 루닛은 연내 연구용 제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던트헬스와의 계약 역시 ‘독점’ 형태로 체결됐다. 가던트헬스는 조직검사 분야에서 루닛 스코프와 유사한 다른 제품을 개발하는 기업과 협업할 수 없는 구조다. 서 대표는 “작년 10월께부터 9개월간 논의를 이어와 최근 투자와 협업이 결정됐다”며 “가던트헬스도 다양한 AI 회사의 제품을 테스트한 결과 루닛 제품의 성능을 제일 높게 평가했다고 했다. 또 비슷한 비전을 가진 점도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전했다. 루닛의 비전은 ‘AI를 이용해 암을 정복한다’는 것이다.
루닛은 올해 매출 100억원을 목표로 설정했다. 작년 매출 14억원보다 무려 6배 높은 수치다. 무리이지 않냐고 묻자 서 대표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5년여 전부터 AI가 퍼지고 있다. 지금까지 AI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졌고 본격적인 상업화는 아직”이라며 “이제는 ‘실제로 이렇게 많이 쓰인다’, ‘우리는 AI로 매출을 어느정도 올린다’를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큰 시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