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25일(현지시간) 치러진 그리스 총선에서 긴축에 반대하는 급진 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압승을 거뒀다. 시리자가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이행조건을 바꾸겠다고 천명한 만큼 채권단과 힘겨루기가 펼쳐질 전망이다. 유로존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시리자 압승‥단독 과반서 2석 부족해 연정 구성
시리자는 이번 총선에서 득표율 36.4%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총리가 이끄는 신민당은 27.8%를 모으는 데 그쳤다. 3위는 네오나치 성향의 극우정당인 황금새벽당으로 6.3%(17석)를 득표했으며 중도 성향의 신생 정당인 포타미(6%)가 뒤를 이었다.
시리자는 전체 의석 300석 가운데 149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애초 집권 여당인 신민당과 3~5%포인트 정도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을 해왔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격차가 더 벌어진 것.
지난 2010년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연금과 임금 삭감, 사회보장기금 감축 등 긴축조치를 강요받자 유권자들이 긴축을 반대한 시리자에 표를 몰아준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과반의석(151석)에 딱 2석이 부족한 상태다. 따라서 다른 정당과 연립정부를 꾸릴 전망이다. 시리자는 중도 성향의 포타미와 중도 좌파인 사회당이나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그리스 독립당과 연립정부 구성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에서는 시리자가 그리스 독립당과 연정에 합의했다는 소식도 흘러나오고 있다. 시리자는 3일 안에 정부를 구성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치프라스 당수는 그리스 헌정 사상 최연소(만 40세) 총리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렉시트 우려는 한풀 꺾여‥‘재협상’ 과정서 불안감 커질 듯
치프라스 대표는 이날 밤 아테네대학 앞에서 총선 승리 수락연설을 통해 “그리스는 5년간 치욕과 고통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며 2010년부터 받은 구제금융 이행조건인 긴축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으로 구성된 채권단과 합의한 이행조건을 파기하고 재협상하겠다”고 말했다.
시리자는 3200억유로(약 390조원) 규모인 국가채무의 절반을 탕감해야 한다며 채권단과 재협상을 요구한 상태다.
치프라스는 지난 2012년만해도 유로존의 탈퇴(=그렉시트)를 거론했다. 일단 유로존에 잔류하면서 구제금융 조건에 대한 재협상으로 한층 누그러진 것이다. 실제 그리스 국민의 70%가 유로존에 남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치프라스 당수는 “우리도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유로존 정부들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유로존을 압박하고 있다.
채권단과 재협상 과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채권단은 그리스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22일 국채 매입을 포함한 전면 양적완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그리스를 최소한 6개월간 국채 매입 대상국에서 배제했다. 그러면서 “(그리스) 국채 매입이 시작되기 전에 트로이카와 합의를 끝내라”며 그리스 정부를 몰아붙였다.
유로존의 맹주 독일도 재협상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 옌스 바이트만 총재는 “그리스의 새 정부가 이미 이룩한 성과와 앞으로 예상되는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채권단과 합의한 구제금융 조건을 이행하라는 압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