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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5000시대’ 공약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원조다.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시절 ‘7·4·7’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며 ‘코스피 5000시대’를 자신했다.
그러나 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달러, 경제 7대 강국 달성이라는 목표는 공염불로 끝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는 역성장했고 장기 비전 부재로 인해 구조개혁은 미비했다.
경제 정책은 4대강 등 단기 건설 투자 위주 정책에 머물렀다. 이 전 대통령 임기말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5000은커녕 2000대 조차 가까스로 턱걸이했다.
이 전 대통령이 공언한 ‘코스피 5000 시대’가 선언적 수사에 그친데 비해 이재명 후보 공약은 ‘신뢰 회복·구조 개혁·투자환경 개선’이라는 3대 축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상대적으로 실현 가능성과 시장 설득력이 높다는 평가다. 다만 증시가 대외 영향을 크게 받는 구조여서 국내 제도 개선만으로 ‘코스피5000’을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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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는 기존의 단기 부양책과는 결이 다른 ‘밸류업’ 전략을 내세웠다. 기업의 내재가치를 끌어올리고, 한국 증시의 저평가 구조를 개선하는 게 핵심이다.
신뢰 회복 측면에서는 주가조작, 시세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등 불공정 거래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통해 단 한 번의 위반으로도 시장 퇴출이 가능하도록 하고, 범죄 사전 모니터링 체계를 정비해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오랜 기간 누적된 자본시장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구조 개혁 부문은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상법 개정이 핵심이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명확히 하고,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집중투표제 활성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부가 중장기 산업 성장 로드맵을 제시해 민간 투자자들이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점도 주목된다.
투자환경 개선을 위해 외국인 투자자 유치를 위한 제도 개선과 함께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겠다고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으로 인한 ‘코리아 리스크’ 해소를 위한 실용 외교를 추진하고,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글로벌 자본의 유입 기반을 넓히고, 자본시장을 선진형 투자처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코스피 5000은 정치적 레토릭”..통제 불가능 변수 많아
그러나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는 이재명 후보의 공약이 실현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기업 가치 제고, 시장 투명성 확보 등 제도 개선만으로 지수가 두배 상승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코스피 지수는 단순히 기업 가치를 더한 덧셈의 결과가 아니라, 거시경제 여건, 투자심리, 글로벌 유동성, 환율 등 복합 변수들의 함수값이다.
이 후보가 내놓은 방안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일정 부분 ‘밸류업’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코스피 지수를 두 배로 끌어올린다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기대라는 평가다.
코스피 지수가 5000선까지 치솟기 위해서는 이 후보가 내놓은 제도 개선 방안이 예정대로 이뤄진다고 전제해도 △기업 실적의 폭발적 증가, △기술산업의 초고속 성장,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자금 유입 등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미국발 통상전쟁으로 수출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고 전 세계 공급망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이같은 요건이 충족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이 후보가 지배구조 개선방안으로 제시한 주요 정책인 상법 개정은 정치적·제도적으로 난제를 안고 있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명시, 집중투표제 확대, 감사위원 분리 선출 강화 등 지배구조 개선안은 “투기자본의 경영 간섭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며 재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다 국회 통과를 위해선 여야 간의 치열한 공방이 불가피하다. 자칫 사회적 합의와 이해 없이 강행할 경우 투자 위축 등 역풍이 불 수 있다.
글로벌 경제와 외교적 변수는 정부 의지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한계 요인이다.
미국의 금리 기조, 중국의 경기 둔화, 미·중 갈등, 북한의 도발 등 외생적 리스크는 한국 증시에 지속적으로 불확실성을 제공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외국인 투자자 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리스크로, 실용 외교만으로 해소하긴 어렵다.
정책의 방향이 아닌 지수 목표를 공약으로 제시하는 방식에 대한 우려도 크다.
시장 전문가들은 주가지수를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시장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코스피 5000이라는 상징적 숫자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정책의 본질보다는 수치에 집착하는 ‘성과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CEO는 “코스피 5000이라는 숫자는 정치적 레토릭이라고 본다”면서도 “시장에서 이 후보 공약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제시한 방법론이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는데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짚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삼성전자, 하이닉스, 현대차 등 주도주들이 크게 올라야 코스피 지수를 견인할 수 있는데 현재 글로벌 경제 환경 아래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