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는 커피는요. 다소 맛이 없을 수 있어도 제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가끔 꼰대 같다고 하는데 저는 제 방식의 커피인으로 살아가려고요.”
“이곳은 카페를 하려고 한 게 아니고 로스터기 제품인 ‘버닝 로스터기’ 쇼룸으로 사용하려고 만든 공간이에요. 예전에 살던 집을 개조한 곳이라 자제도 좋은 것으로만 사용했어요. 가끔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아이들이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마룻바닥도 폐교에서 버려진 나무를 사용했어요. 이 나무들은 단단해서 제가 다시 사용할 수 있었어요. 이곳을 완성하는데 꼬박 1년 하고도 반이 걸렸어요. 카페를 오픈한지는 6개월 정도 되었어요.“
삼거리 다방이라는 이름은 커피 친구인 이석윤님(제주에서 인천으로 올라와 그와 커피를 하다가 호주로 선교를 떠나신 목사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그는 처음에는 자꾸 삼거리 다방이라고 불러서 싫어했었는데 친구가 떠난 후 그리운 마음에 ‘삼거리 다방’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주변 아파트에 사시는 주민분들이 찾아와 카페를 하면 어떠냐고 권유하셔서 동네 카페 겸 쇼룸을 겸하며 사용 중이다.
“제가 19살 때 수능시험을 마치고 무작정 집을 나왔어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먹여주고 재워주니 그것만으로도 좋았어요. 아침에는 전단지를 돌리고, 오후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단란 주점을 오가며 지냈어요. 일했던 카페가 경양식도 함께 하던 곳이었는데 사이폰 커피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처음 배웠어요. 그때는 대부분 인스턴트커피인 ‘맥스웰 커피’를 마시던 시절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원두커피를 같이 팔았어요.”
7개월의 방황은 그의 형이 군대를 가면서 끝났다. 그 뒤로 그는 아주 평범한 생활은 했다.
그 이후는 어땠나요?
“그때 이후 대학을 가고, 군대도 다녀왔어요. 한참 지나 카페를 시작했는데 왠지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 접었어요. 결혼을 한 상태라 아이들 교육 때문에 잠시 고민도 했어요. 쳇바퀴 돌리듯 아이들을 내몰고 싶지 않아 변두리로 이사를 했어요. 좀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어요. 마음이 행복한 아이로”
카페를 접고 나서 그는 커피 공부는 계속했다. 커피를 계속하려면 기계와 산지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생두를 가지고 오면 로스팅 하는 방법은 알지만,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로스터기에 대해서는 납득이 안 가는 의문점이 많았다. 그 당시 로스터기는 주로 독일, 네덜란드, 일본 기계가 유명했고 국내에는 한 업체가 기계를 독점했던 시기였다.
“독일이나 네덜란드, 일본, 미국, 터키 등 기계로 로스팅을 해봤어요. 1kg 로스터기에 같은 양의 생두를 넣었어요. 로스팅을 하면 생두가 800g 정도만 나오는 거예요. 그럼 2kg을 하려면 3번이나 로스팅을 해야 하니 그들(로스터 기회사)이 말하는 1kg급 로스터기라는 말이 조금 괘씸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기계는 청소가 중요한데 전문가가 아니면 손을 델 수가 없게 만들어졌어요. 그것도 한번 청소업체를 부르면 60만 원에서 100만 원이 들고, 청소도 하루 정도 꼬박 걸렸어요. 기계청소는 비용 때문에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 정도 청소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더라고요.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카페에서 손님에게 서비스하고 커피 볶기도 바쁜데 말이죠.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잘 나가는 외국 업체의 기계들을 뜯어보니 아귀도 안 맞고, 고무도 헐거워져 있었어요. 도장도 보이는 부분만 도장이 되어있고 그래서 조금 황당했던 기억들이 있어요. 이런 기계를 몇 천만 원씩 받고 우리나라에 팔다니. 괘씸한 마음에 기계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정확히 알고 좋은 기계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은 그때 했어요. 많은 어려움이 있었죠. 개발 기간 동안 계속 투자만 했으니까요. 그래도 지금까지 믿고 곁에서 같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박성태 이사님, 이형열 이사님, 그리고 이석윤 님과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어요.”
“커피 산지들은 대부분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회귀선 안에 들어 있어요. 이것을 사람들은 ‘커피 벨트’, 커피 존(Coffee Zone)이라고 부르죠. 남북 양회귀선 북위 25도, 남위 25도 사이의 적당한 기후와 토양이 커피 재배에 가장 좋은 환경이라 그래요. 열대나 아열대 지방이 커피의 원료 생산에 유리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고요. 커피 최대 생산지로 가장 유명한 아프리카의 고산지대나 브라질, 콜롬비아 등이 있죠.
커피를 소비하는 소비 국가들 때문에 그곳의 아이들은 농장에서 매일 일을 해요. 특히 여자들이. 그래서 우먼인 커피라는 슬로건도 있어요. 산지에 가면 대부분 여자분들이 열매를 따니까요. 그들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읽어보면 더 실감하게 되죠”
인터뷰 이후 그 책을 읽었다. 아름답게 포장되었던 커피 시장의 또 다른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책에서 말한 것처럼 그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삶을 빼앗아 버린 세상, 행복하게 학교를 다니고, 오순 도순 가족이 모여 커피 한잔 나눠 마실 수 있는 그 소박함을 빼앗아 버린 국가와 다국적기업들. 우린 얼마나 많은 것들에 조정되어 살아왔는지. 정작 가려진 본질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면서 말이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칠레의 소아과 의사 출신의 정치가로 대선에 당선된 대통령이었어요. 칠레가 유아 사망률이 정말 높잖아요. 이분이 대선에 나와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겠다고 공약을 걸었죠. 당선된 이후 미국과 다국적 기업들의 저항세력에 의해 암살당하게 되죠.”
사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커피는 거대 기업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마시던 커피, 좋아하는 커피는 나의 의지로 선택된 것일까? 고민해 볼 문제다. 그러고 보면 강제로 먹게 되고, 쓰는 모든 것들은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사람들은 휩쓸려가는 것이다. 미처 깨닫지 못할 뿐.
”커피 인들이 산지에 가면 커피 열매를 손에 담아 인증샷을 찍잖아요. 첫째 딸이랑 처음 해외여행을 가는데 아프리카를 데리고 갔어요. 2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그곳까지 갔는데 일반인들과 같은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는 열매를 아이에게 손으로 떠보라고 하고 사진을 찍어줬어요. 아이는 잘 몰랐을 거예요. 그게 버려진 커피 열매라는 것을요. 그날 그 사진을 찍으면서 좋은 것 이면에 감춰지고 버려지는 또 다른 이면이 있다는 것을 일러주고 싶었어요. 좋은 것만 보여주기에는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니까요. 이런 생각들이 자라나 당장은 아니더라도 바른 아이로 자랐으면 해요. 그때는 좀 더 공정하고 사람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면서요.
한 달 동안 금식하듯 아이는 거의 못 먹었어요. 음식이 맞지 않아서 고생도 많이 했어요. 인도 할아버지 집에서 자면서 커리가 나오면 손으로 먹어야 하고, 정말 난감한 여행이었죠. 청연이가 많이 놀랐을 거예요.”
카페 2층에 가면 그때 찍었던 버려진 커피 열매 사진과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 그날의 아빠 마음이 앨범 안에 담겨 있다.
“생두를 사기 위해 산지를 가면 1불이라도 더 주고 와야 마음이 편해져요. 그런데 좋은 커피를 가져오고 싶지만 너무 어려워요. 맛있는 커피를 못 찾으면 1주일이 더 늦어지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생두를 가져오는 일은 생각처럼 정말 쉽지 않아요. 수입업체들이 질 좋은 생두를 매장에 들여놔 주는 건 무척 감사한 일이에요, 행운이기도 하고요. 대중들이 원하는 스페셜티와 맛있는 새로운 커피를 찾는 것이 원두 수입업체가 풀어야 할 가장 큰 핵심이죠.
한때 유행했던 묵직한 바디감의 인도네시아 커피가 없어지고, 게이샤 커피나 작년에 저희가 찾아 수입했던 GCA 대회에 1등 한 케냐 구아마 커피까지 커피 시장은 날로 변화고 있죠. 맛있었던 커피는 올해는 가지고 올 수 없어요. 중국이 전량 수입해 버리니까요. 다국적 기업들도 좋은 원두라면 산지를 통째로 사 가요. 그러니 경매시장에 나오지 않죠. 수입업체들은 매번 다이아몬드를 발굴하듯 새로운 커피를 찾기 위해 산지를 다녀요.
아프리카에 커피 경매장이 있어요. 케냐를 예를 들면 경매가 열리는 전 주에 수 천종의 커피가 한곳에 다 모이게 되죠. 그곳에서 저희는 좋아 보이는 커피 200~400샘플을 사서 일일이 볶아서 맛을 본 다음 경매가 열리는 날 경매장에 가서 경매를 해요. 그런데 우리가 선택했던 161번 커피는 경매장에 안 나오는 경우들도 있어요. 이미 큰 업체들이 다 사 갔기 때문이죠.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요. 수입상들은 정말 다이아몬드 같은 커피를 찾아 헤 메죠. 좋은 커피를 국내까지 들여오는 데까지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며 들여오는 거예요”
카페 창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수업 첫 시간에 커피를 왜 배우려고 하느냐? 물어봐요. 보통 창업을 하거나, 나중을 위해서, 부업으로 시작하려고 하죠. 만약에 하시려면 꾸준히 공부할 자신이 있다면 시작하라고 말해요.
제가 커피를 하면서 좋아하는 분이 계세요. 서초동에 ’바오밥‘ 이종신 대표님이세요. 서초동에서 9200번 버스를 타고 20분을 걸어서 저희 카페를 들리시는 분이에요. 오셔서 하시는 말씀은 “이 대표 사이폰 한잔 내려줘“라고 하시면서 사이폰 배우려고 왔다고 하세요. 이미 커피 원로로써 존경받는 분인데도 끊임없이 커피를 배우세요. 전 그분의 한결같은 마음가짐이 좋아요. 다들 이 분처럼 초심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커피를 너무 어렵게 해석하는 것 같아요. 일본에서 배워 온 분이 많아서인지 점 드립을 하다든지, 아주 가는 줄기로 커피를 내리던지, 장인 정신을 너무 강조하는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반면에 그로 인해서 놓치는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유럽을 보면 정말 쉽게 커피를 내리고 마셔요.
어떤 면에서 보면 커피를 하시던 분들이 커피교육을 너무 어렵게 해요. 커피를 배우는 교육생이 6개월간 물줄기를 떨어뜨리는 연습을 한다던 지, 3년 차인데도 커피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할 정도니까요. 심지어 로스팅을 배우려면 상식 선을 벗어난 고액의 비용을 내야 한다니. 사실 저는 납득이 잘 안가요.
기계를 만들 때도 그랬지만 커피를 대하는 자세도 같아요. 상식적인 선에서 납득이 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확실한 근거 없이 정해지는 고정관념을 싫어해요. 완벽하게 똑같은 맛을 구현한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 들어요. 오늘 볶은 커피와 내일 볶은 커피가 같아야 한다? 저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른 그 다양성이 더 좋아요. 싫은 것이 아니라 변화된 맛을 받아들이는 편이라 할 수 있죠. 사람들은 로스팅 하면 겉과 속이 똑같은 것을 원하지만 어느 정도의 허용범위 안에서의 로스팅은 향의 스펙트럼이 넓어 좋다고 생각해요.”
커피인들은 가끔 그를 꼰대 같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다양함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변화된 맛을 즐길 줄 하는 이 대표. 나 역시 공감이 된다. 그 커피 맛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며 감별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하는 커피 인으로 살아가려 구요. 올바른 부모가 되어 마음이 행복한 아이를 잘 키우면서요. 3년 뒤에는 아이들과 아프리카에 1~2년 정도 머물 생각이에요. 틀에 박힌 인생보다는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성공적인 삶과 행복한 삶, 두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행복한 삶을 선택하는 이대열 대표. 가치 있는 일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지만 그만큼 더 많은 행복이 따라온다. 자신은 물론 가족, 커피 현지인, 커피 인들이 공생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람. 그는 참 바른 사람이다. 그날 나는 커피가 맛있는 집보다는 보물 같은 바른 커피 인을 찾은 듯 기뻤다.
행복한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 돈, 사랑, 건강. 그것은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일 뿐이다. 진정한 행복은 틈틈이, 바람처럼, 가뭄의 단비처럼, 맛있는 커피처럼, 아이들이 그려준 세상 단 하나의 옷을 입고 활짝 웃으며 생활하는 그 모든 일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