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Z세대를 위주로 빠르게 유행 중인 ‘벌집꿀 아이스크림’이 수개월째 품절 현상을 겪자 많은 소비자들의 애가 타고 있다. 하지만 양봉업계와 전문가들은 단순한 아이스크림의 문제가 아닌 기후변화에 따른 총체적 난맥상을 보여주는 단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기후에 따른 꿀벌 농사 실패가 반복되고 꿀 수확이 줄어들게 되면 대규모 식량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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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벌집꿀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는다는 이모(24)씨는 “벌집꿀이 SNS에서 유행이라 꼭 먹고 싶지만 품절인 경우가 많다”며 “간간이 입고되는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알림 설정까지 해둔다”고 전했다. 이씨는 “소량이라도 입고되면 동나기 전에 재빨리 친구들과 입고 소식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벌집꿀을 공급하는 양봉업계에서는 벌집꿀 품귀 원인을 몇 년째 이어진 이상기후로 짚었다. 한 요거트 아이스크림 브랜드에 벌집꿀을 납품 중인 경기도 불로양봉원 대표 김선희(72) 씨는 “봄가을엔 10일 만에 벌집 한 통이 차는데 무더위에는 꿀벌의 활동량이 줄어 20일이 지나도 한 통을 못 채운다”며 “올해는 폭염이 너무 길게 이어지면서 벌꿀 수확량이 작년의 3분의 1로 급감해 납품할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정을 보여주듯 배달 앱에선 ‘벌집꿀’ 옵션이 품절돼 벌꿀 스틱 등으로 대체하라는 권유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이스크린 브랜드 SNS 계정에는 “요즘 전국적으로 벌집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며 “벌집꿀 품귀 현상에 따른 가격 폭등으로 8월 26일부터 벌집꿀 가격을 3500원으로 인상한다”라는 게시글이 공지돼 있다.
◇‘따뜻한 겨울’에 농가 피해 극심…전문가 “대규모 식량난 올 것”
양봉업계는 꿀벌이 겨울을 지나는 월동 기간을 한해 양봉 농사 중 가장 중요한 시기로 꼽는다. 이 기간 꿀벌이 죽지 않고 생존해야 한해 양봉 농사가 무사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뜻해진 겨울로 인해 양봉 농가는 갈수록 골치를 앓고 있다.
김선희 불로양봉원 대표는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7~8년 전부터 꿀벌 천적인 외래종 말벌이나 기생충이 경기도까지 북상하고 있다”며 “농가들의 자체 방역만으로 온난화 피해를 막기엔 한계가 온 지 오래”라고 호소했다. 실제 한국양봉협회가 올해 3월 발표한 ‘2024년 월동 후 피해 현황’에 따르면, 서울·경기 양봉업계 2325곳의 17만 3312개 봉군(꿀벌 집단) 중 9만 4014개가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수도권 농가의 봉군 중 54.2%가 월동 피해를 입은 셈이다.
온난화로 따뜻해진 겨울이 꿀벌의 생존에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뒷받침됐다. 키르티 라자고팔란 미국 워싱턴주립대 조교수팀은 지난 3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뜻해진 겨울로 꿀벌이 겨울잠에서 일찍 깨며 상당수가 과로사 중’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팀은 “온난화가 이대로 유지된다면 2100년에는 꿀벌 개체수 마지노선이 붕괴돼 꿀벌들의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이상기후가 방치되면 벌꿀을 포함한 대규모 식량난이 올 거라 경고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이상기후로 꿀벌이 위협받는 건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며 “지금은 벌집이지만 나중에는 베리류, 아몬드 등 꿀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식품에서 대규모 식량난이 닥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꿀벌이 사라지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연구가 여전히 부족하다”며 “지금이라도 생태계 내 벌의 역할에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