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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값 경보만으론 부족…"수입 중단 대응 법적 기반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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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엽 기자I 2026.10.06 10: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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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급등 넘어 수출 제한·공급망 교란 대비해야
공급 20% 감소·하루 1850㎉ 미만 등 위기 기준 제안
최악 상황엔 총리 중심 대응본부…증산·공정 배분
보리·콩 생산기반 확보…공공·민간 비축 확대 필요

[세종=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는 상황을 넘어 수출 제한으로 식량 자체를 확보하지 못하는 위기에 대비한 범정부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공급 부족의 정도에 따라 위기를 네 단계로 구분하고, 최악의 상황에선 국민에게 필요한 열량을 기준으로 생산과 배분을 조정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식량안보 위기 시나리오와 대응 체계 구축’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곡물 수입이 장기간 차질을 빚는 상황을 가정한 분석을 바탕으로 위기 단계별 대응책과 관계부처의 역할, 이를 뒷받침할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사진=AFP)
(사진=AFP)
보고서는 기존 국제 곡물 조기경보시스템도 수급과 가격, 수출 제한·물류 차질 등을 고려하지만 실제 수입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공급 부족의 지속 기간과 국민에게 필요한 최소 열량을 반영하고, 수입·국내 생산·비축을 연계한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연구진은 평시인 0단계부터 가장 심각한 3단계까지 네 단계로 위기를 구분했다. 1단계는 물량 공급은 안정적이지만 일부 품목 가격이 일시적으로 오르는 상황이다. 2단계는 일부 품목의 공급 문제나 가격 급등이 최대 1년간 지속되는 상황으로, 해당 품목 공급량이 평년보다 20% 이상 감소하는 경우를 정량적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3단계는 두 개 이상 품목에서 심각한 물량 부족이 1년 이상 지속돼 국민에게 필요한 최소 열량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1인당 하루 공급 열량이 1850킬로칼로리(㎉)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를 정량적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대응 방식도 단계에 따라 달라진다. 1~2단계에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식량 위기 대응위원회’를 통해 비축물량 방출과 출하·판매 조정, 수입·생산 촉진 등을 추진하도록 제안했다. 3단계에선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식량 위기 대응본부’를 설치해 최소 열량 확보를 위한 증산과 한정된 식량의 공정한 배분, 가격 안정에 나서야 한다고 봤다.

(표=한국농촌경제연구원)
(표=한국농촌경제연구원)
수입 차질이 장기화하면 국내 생산을 늘리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보고서는 작물의 생육 시기가 정해져 있어 공급 부족이 발생한 시점에 따라 수확까지 1년 정도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소 농지와 농업용수 시설을 보전하고 종자를 확보하는 한편, 휴경지 등을 활용한 증산 여력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 이유다.

위기 상황에선 보리와 콩의 전략적 중요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밀·콩·옥수수 등의 수입이 제한될 때 최소한의 조달비용으로 필요한 열량을 확보하는 모형을 구축했다. 국내 생산으로 충당하는 열량의 비중인 ‘칼로리 자급률’을 기준 모형 수준인 29.4%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설정한 분석에선 겨울철 논에서 재배하는 보리와 밭작물인 콩의 생산 확대가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칼로리 자급률에 별도 제약을 두지 않고, 수입이 막힌 곡물 외의 식량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현재 재배면적으로도 필요한 열량을 공급할 수 있었다. 다만 연구진은 주요 곡물의 수입이 동시에 끊길 정도의 위기가 발생하면 다른 작물의 수입도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국내 생산으로 최대한 많은 열량을 확보하려면 현재의 경지면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생산기반 확보와 함께 정부와 민간의 비축 확대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국내산 쌀·콩·밀을 중심으로 한 정부 비축에 더해 원료 곡물을 수입하는 민간업체를 지원하고, 국내 재고뿐 아니라 해상 운송 중이거나 계약으로 확보한 물량까지 파악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보고서에 담긴 전문가 54명 조사에선 75.9%가 공공비축과 민간 비축을 결합하는 방식을 적합한 비축방식으로 꼽았다.

이 같은 단계별 대응을 뒷받침할 법적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량안보 관련 기존 법률을 보완하고 독립된 식량안보법을 제정해 국가의 책무와 국민의 식량 접근권, 대응본부의 설치·운영, 업계와 생산자에 대한 공급 확보 요청·지시 등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중앙정부·지자체·민간이 참여하는 식량 위기 대응 기금과 정기적인 모의훈련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승준호 KREI 부연구위원은 “식량안보는 위기가 발생한 뒤 대응하기보다 평상시부터 단계별 위기 수준에 따른 선제적 대응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안정적인 식량 공급과 국민의 식량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농지와 생산기반 유지, 전략적 비축 확대와 함께 실제 위기에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대응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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