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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검사 출신 금감원장으로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원장은 비단 속도에서 뿐만 아니라 메시지 측면에서도 업계 CEO들과의 간담회에서 연이어 존재감을 뽐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시장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이자 장사 하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에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대출 금리 인하에 나섰다. “태풍 불기 전에 나뭇가지 정리하라”는 발언에 보험·카드사들은 재무 건정성 확보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대단한 속독가로 알려진 이 원장은 업계 각 영역별 연쇄 간담회와 별개로 자신의 특기를 십분 살려 매일 수백 페이지의 페이퍼를 보고 받고 이를 탐독 중이다. 업계의 이슈를 최대한 빠르게 습득하고 그들의 요구에 대응해 금감원이 어떤 방식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지 준비하는 과정인 셈인데, 업계는 그의 스터디 이후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소지한 채 검사 생활을 시작한 이 원장은 약 20년의 검사 생활 동안 경제·금융 수사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는 검사 재직 당시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골 검사로 주목받았다. 지난 2020년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수사 당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기소하며 ‘삼성 저승사자’로 불렸다. 올해 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국면에서는 김오수 당시 검찰총장에 가감 없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여기에 소위 ‘윤석열 사단’ 막내 라인 특수통 검사로 윤석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역대 최연소 금감원장에 발탁됐다는 점에서 그의 메시지에 금융업계가 느끼는 압박감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 원장이 은행권의 예대금리차 확대와 그에 따른 지나친 이익 추구를 비판한 이후 업계 분위기가 많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경제 상황에 대비하려면 금리가 불가피하게 높아질 수 밖에 없는데 이 같은 목소리를 내기가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취임 첫날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재조사를 암시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는 등 ‘감독’ 기능보다는 ‘검사’에 힘을 주는 듯한 발언에 금융업계의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 카드 업계 관계자는 “취임 직후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다시 들여다볼 지 점검하겠다고 하면서, 금감원이 검사에 힘을 주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일단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자체적으로 긴장감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모습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이 원장의 얘기는 결국 금융 소비자들을 위해 금융사들이 사회 환원에 신경써 달라는 주문이기 때문에 과도한 개입이라고 보진 않는다”며 “우리도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 맞춰 리스크 관리 부분에 더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 당국의 지침에 최대한 동참할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