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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카리브 해 연안 섬 국가들이 경기 살리기 위해 투자이민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관광 인프라 건설용 자금유치에 어려움을 겪자 시민권을 내세워 투자유치에 나선 것이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카리브 해에 있는 작은 섬나라 세인트루시아는 내년 1월1일부터 투자이민법을 시행키로 했다. 옆 나라인 세인트키츠네비스, 도미니카, 그레나다, 엔티가바부다도 이미 이같은 제도를 도입했다. 보통 20만달러 이상의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하면 이들 국가의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
세인트키츠네비스의 키티언힐에 84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 호텔과 18홀 골프장을 짓고 있는 개발업자 발미키 켐파두는 투자이민법을 통해 200명의 외국인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그는 “아무것도 팔 수 없는 건설 초기 단계에 이같은 투자이민법은 상당히 유용하다”고 말했다.
개발자 버디다비는 요트 정박용 항구와 125실을 갖춘 파크 하얏트, 개인 거주시설 등이 들어설 크리스토르 하버 프로젝트에 지금까지 3억500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이중 4200만달러를 투자이민법을 통해 유치했다.
티모시 힐레어 세인트키츠네비스 총리는 한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금액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투자이민을 통한 수입이 올해 예상을 42% 초과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투자이민 제도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키프로스나 몰타 같은 지중해 연안국이 시행하고 있고, 미국도 일자리를 창출하는 특정 업종에 50만달러 이상을 투자할 경우 시민권을 제공하는 EB-5 비자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최근 카리브 해 연안국이 매력적인 투자이민 대상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유는 시민권 받는 과정이 다른 국가에 비해 유연한데다 유럽을 포함해 100개 이상의 국가를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 중동 등 해외 방문에 제한이 많은 국가의 부호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절세효과를 누리는 미국인도 주요 대상자다.
에이펙스 캐피탈 파트너스는 카리브 해 연안국이 올해에만 2000명의 투자자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5년 전에 비해 최소 두 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특히 미국인이 많아 에이펙스는 최근 몇 달 사이에 100명 이상의 미국인이 카리브해 연안국에서 시민권을 얻은 것으로 파악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시민권 포기자는 3415명으로 전년대비 14% 늘었고 2012년에 비해서는 세배 이상 증가했다. 미국이 2010년 해외금융계좌신고법을 제정해 국외에 거주하고 있는 자국민에 대한 세금추징을 강화한 탓이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면 한해 세금을 45% 줄일 수 있다는 게 관련 업계 설명이다.
하지만 우려도 있다. 미국 정부는 카리브 해 연안국들의 투자이민법이 불법 금융에 이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재무부는 금융기관에 공문을 보내 이란 핵협상이 타결되기 전에 이란인들이 세인트키츠네비스의 여권을 취득해 경제제재를 교묘히 피해 가고 있으니 예의주시하라고 당부했다.
리조트 캐피탈 파트너스의 릭 뉴튼 파트너는 “미국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투자이민 붐은 이어질 것”이라며 “외국계 은행들이 카리브해 연안국 개발 프로젝트 대출을 꺼리고 있는 만큼 투자이민자들이 대출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