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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업체에 대한 검찰 재수사가 8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일어난 지 8년 만으로 검찰은 8명을 구속 기소하고 26명에 대해 불구속 기소하는 등 총 34명을 재판에 넘겼다.
23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권순정)는 올해 1월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을 수사해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홍지호(68) 전 SK케미칼 대표이사 등 3명을 구속 기소하고 SK케미칼·애경·이마트·GS리테일 등 6개 업체의 전·현직 임직원 1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검찰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 등에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공급한 전 SK케미칼 직원 1명을 구속 기소하고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대규모 건강 피해 사건 진상 규명을 방해한 행위와 관련해 증거를 인멸·은닉한 SK케미칼·애경·이마트 전·현직 임직원 3명을 구속 기소하고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특히 환경부 내부 정보를 누설하고 증거인멸을 교사한 환경부 공무원(서기관·44)을 불구속 기소하고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소환 무마 등 알선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전 국회의원 보좌관(52)을 구속 기소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환경부의 자료제출 요구에 불응하고 거짓 의견을 제출한 SK케미칼·SK이노베이션 직원 4명 및 법인 2곳도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를 담당한 권순정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 공판을 전담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공판팀을 구성해 책임자들이 죄에 상응하는 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검찰은 환경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피해자 단체 등과 지속적으로 협력·소통해 재판 과정에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고 피해자들이 피해를 회복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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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상규명 방해행위 엄단…`가습기살균제특별법` 최초 적용
검찰은 이번 재수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해 제정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를위한특별법`에 따른 자료 제출 불응 행위에 대해 법상 벌칙 규정을 적용해 최초로 기소했다. 이에 따라 SK케미칼의 윤리경영부문장을 맡았던 박철(52) 전 부사장과 이 회사의 법무실장(48)·커뮤니케이션실장(56) 및 법인을 기소했다. 또한 SK이노베이션(50) 법무팀장과 법인도 각각 기소했다.
아울러 대상 기업과 유착돼 각종 내부 자료를 유출하고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를 인멸하도록 조언한 환경부 공무원, 공직 근무 인맥을 활용해 기업 관계자의 사회적 참사 특조위 소환 무마 등 알선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전 국회의원 보좌관을 적발했다. 국회 보좌관에 대해선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가법) 위반 알선수재죄가 적용됐다.
검찰에 따르면 환경부 공무원의 경우 지난 2017년부터 올해까지 애경으로부터 수백만원 상당의 금품 및 향응 등을 제공받고 환경부 국정감사 자료, CMIT·MIT 함유 가습기살균제 건강영향 평가 결과보고서 등 각종 내부 자료들을 제공해 수뢰후부정처사, 공무상비밀누설죄가 적용됐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애경 직원에게 검찰 수사가 개시될 것으로 보이니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들을 철저히 삭제하라고 해 증거인멸을 교사한 혐의도 받고 있다.
SK케미칼은 정부부처 조사·수사 및 소송·언론 보도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한 가습기살균제 태스크포스(TF) 활동과정에서 안전성 부실 검증 사실이 확인되는 자료인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를 은닉하는 등 가습기살균제 관련 각종 자료들을 삭제한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애경의 경우 가습기살균제 수사가 본격화되자 본사 및 중앙연구소 총 55명 직원 PC의 하드를 교체하고 이메일을 완전 삭제하게 하며 ‘파란하늘 맑은가습기’ 관련 자료,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 등을 인멸하거나 은닉했다. 이마트는 검찰 압수수색 당일 가습기살균제 담당 직원의 노트북 1대를 은닉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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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위 피고발 건 계속 수사中…“객관적·과학적 증거 찾아”
이번 수사 결과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검찰은 유선부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16명이 지난달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전·현직 공정위 고위 관계자 17명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수사해달라”며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고발장과 관련, 계속 수사 중이다.
권 부장검사는 “공정위 피고발 사건은 현재 형사2부에 배당돼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최근 접수된 관계로 이번 수사결과 발표에는 포함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공정위는 SK케미칼·애경산업 전직 대표 4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이마트를 포함한 업체 3곳에 과징금 1억3400만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SK케미칼이 사명을 SK디스커버리로 바꾼 사실을 뒤늦게 파악해 추가고발을 하는 등 우왕좌왕한 끝에 검찰에서 공소시효 만료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마트에 부과한 과징금 700만원도 행정소송에서 처분시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취소 판결이 나왔다.
이날 검찰은 SK케미칼·애경·필러엔 지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흡입독성 있는 화학물질(CMIT·MIT)로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 ‘이마트 가습기살균제’를 개발·제조·판매함에 있어 객관적·과학적 방법으로 안전성을 검증하지 아니한 과실 등으로 12명 사망, 87명 상해에 이르게 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했다. 이마트에 대해서도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명 사망, 17명 상해에 이르게 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됐다. GS리테일·퓨앤코 역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함박웃음 가습기세정제’를 개발·제조·판매함에 있어 객관적·과학적 방법으로 안전성을 검증하지 아니한 과실 등으로 1명 사망, 2명 상해에 이르게 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했다. 옥시·홈플러스·롯데마트는 가습기살균제 원료 공급에 대한 과실이 인정됐다.
권 부장검사는 “1994년 최초의 가습기살균제 개발 당시 자료인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 연구노트 등을 압수해 최초 개발 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부실 개발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앞선 검찰 1차 수사 때 법원이 판시한 `객관적·과학적 증거`를 확보해 혐의 및 인과관계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