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품질 기준 자체가 수입산 멸균우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가격 오름세 또한 수입산 멸균우유도 가파르다는 설명이다. 우리 낙농가 생존을 위해 유업체별 정해진 쿼터를 소화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수입산 멸균우유 수요가 빠르게 늘 경우 유업체는 물론 낙농가까지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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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낙농진흥회가 올해 음용유용 원유 가격을 1ℓ당 88원 올린 1084원으로 결정하고 오는 10월 1일부터 이를 적용키로 하면서 서울우유와 매일유업, 남영유업 등 국내 주요 유업체들 역시 흰 우유 가격 조정에 대한 검토에 돌입했다. 지난해 원유 가격이 49원 인상됐을 때 각 업체들은 흰 우유 출고가격을 6~10% 수준 인상해 현재 1000㎖ 또는 900㎖ 기준 2800원대 후반을 형성하고 있는 만큼 올해 인상폭을 반영하면 3000원대 진입이 유력하다.
고물가에 시달려온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비싼 국산 흰 우유 대안을 찾는 소비자들 늘면서 실제로 국내 주요 대형마트들은 올해 상반기 수입산 멸균우유 판매량이 전년보다 6~10배까지 늘었다고 한다. 지난달 말 데이터 기반 리서치 기업 메타서베이가 10~70대 남녀 소비자 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비싼 가격 때문에 흰 우유 대신 멸균우유를 구매해 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65.8%가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다.
국내 유업계는 속상함을 감추지 못한다. 일단 절대적 가격에서 국산 흰 우유가 수입산 멸균우유 대비 비싼 것은 사실이나 품질 기준에서 비교 불가하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 기준 1등급 원유 기준은 1㎜당 세균수 3만개 이하, 체세포수 20만개 이하다. 다른 낙농선진국인 독일의 경우 세균수 10만개 이하, 체세포수 30만개 이하다.
수입부터 통관까지 포함해 두 달여 장기간 걸려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고 1년이란 긴 유통기한에 신선도도 비교가 어렵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수입되는 폴란드산 멸균우유의 경우 자국 내에선 시장 요구에 따라 유통기한을 6개월로 잡지만 같은 제품을 우리나라에 들여올 경우 1년으로 늘려 적용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수입산 멸균우유 역시 최근 큰 폭 인상이 됐지만 밀크플레이션의 원흉으로 국산 흰 우유만 거론된다는 점에 억울함을 감추지 못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멸균우유 1ℓ당 수입단가는 지난해 평균 1096원에서 올해 6월 1211원으로 10.5% 올랐다. 폴란드산 멸균우유 ‘믈레코비타’는 국내 주요 이커머스에서 지난해 하반기 1ℓ 12개입 기준 1만8000원대에 판매했지만 현재는 가격이 2만1000원대다.
세계 주요 국가의 주요 제품 소비자가격 정보를 공개하는 ‘글로벌 프로덕트 프라이스 닷컴’에 따르면 폴란드 현지 우유 가격은 지난해 1ℓ당 0.5달러 수준에서 올해 6월 0.86달러로, 독일 현지 우유 가격 역시 같은 기간 1.8달러 수준에서 2.18달러로 오름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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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업계에서는 수입산 멸균우유 수요가 더욱 확산할 경우 국내 낙농산업의 붕괴마저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원유 수급 및 가격 결정 체계, 낙농가 및 유업계 지원 방안 등 근본적인 고민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오는 2026년 미국·유럽연합(EU)를 시작으로 2033년 호주, 2034년 뉴질랜드 등 수입산 우유·치즈에 무관세 적용마저 예고된 마당이다.
A사 관계자는 “국산 원유 가격은 낙농가의 생산비를 핵심 기준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실제 시장 수요와 괴리감을 보인다”며 “해외 낙농선진국 대비 사료를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생산비가 높아 원유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환경에서 수입산 멸균우유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 유업계는 물론 낙농가까지 고사 위기에 놓이게 된다고 했다. B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2002년 쿼터제를 도입해 낙농가에서 생산한 원유를 각 유업체별로 쿼터를 무조건 매입해야 한다”며 “국산 흰 우유 소비가 줄면 그만큼 각 유업체별로 할당받은 원유가 남게 된다. 버릴 수 없어 분유, 멸균우유 등 다른 유가공 제품을 생산하는 데에 불가피하게 활용하지만 손해는 커진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