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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카린 켈러-주터 스위스 재무부 장관은 이날 신탁이나 기업 등 투자자산의 실소유주 명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금융개혁안 초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혁안은 스위스가 지난 3년 동안 금융 범죄에 대한 법률을 전면 검토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로 제시된 법안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내용은 법인이 벌어들인 수익을 최종적으로 누가 소유하게 되는지 실명으로 등기토록 하는 이른바 ‘연방 등록부’ 도입이다. 유럽 국가 가운데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곳은 스위스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일반 대중은 연방 등록부에 접근할 수 없지만, 규제기관, 정부, 경찰, 실사를 수행하는 은행과 변호사 등은 요청시 열람이 허용된다.
아울러 스위스는 그동안 10만스위스프랑(약 1억 5000만원) 이상인 경우에만 자금세탁 심사를 받도록 했지만, 개혁안이 시행되면 심사 기준이 1만 5000스위스프랑(약 2260만원)으로 대폭 낮아진다. FT는 “자금세탁을 단속하기 위해 전면 대응에 나서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위스의 인구는 총 870만명에 불과하지만, 스위스 은행들이 보유한 해외 자산은 약 2조 4000억달러(약 3174조 4800억원)에 달한다. 스위스의 모호한 규정을 악용해 자금세탁 및 탈세 등 금융 범죄와 연관된 불법자금이 몰린 탓이다. 스위스 은행들은 해외 자산에 대해 철저한 비밀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이에 스위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부호들의 자산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켈러-주터 장관은 “금융 범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 구축은 국제적인 평판 측면에서는 물론, 중요하고 안전하고 미래지향적인 금융중심지 (지위)를 유지하는 데 있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어 “자금세탁은 (스위스) 경제에 해를 끼치고,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며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스위스 금융 시스템의 무결성,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법안 시행까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초안은 향후 3개월 동안 의회, 주정부, 시민단체 등의 협의 기간을 거친 뒤 ‘정식’ 법안으로 수정돼 내년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이 기간 동안 은행과 변호사 등이 정당이나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펼칠 수 있어 개혁 취지가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고 F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