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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의 이게머니]공수표 전락한 한은 물가목표제…시장 불신만 키웠다

최정희 기자I 2021.05.12 14:51:17

한은 2% 물가목표 밑돌아도 오히려 금리 인상
ECB 내부 美 AIT처럼 2% 넘는 물가 용인해야 주장
주요국 중앙은행 ''물가상승 일시적''에 무게
인플레 변곡점 속에 물가목표제 허상 점검해야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모든 것이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에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8년 만에,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경기회복과 함께 인플레이션 우려를 가중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디플레이션(물가수준 하락) 우려에서 과거 인플레이션 시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 사태로 작년 상반기에 물가가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려하면 하반기까지 지켜봐야 진정한 ‘인플레이션’ 시대가 왔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디플레로의 회귀냐, 인플레냐를 다투는 변곡점에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채택한 ‘2% 물가목표제’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수 년간 물가상승률 2%(연간)를 제대로 달성한 나라가 없다.

우리나라만 봐도 2013년부터 8년간 물가상승률이 2%를 밑돌았지만 한국은행은 오히려 기준금리를 올리기도 했다. 2% 물가목표라는 게 그냥 말뿐이었다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이 작년 8월 채택한 평균물가목표제(AIT)를 관심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AIT는 2% 물가목표를 일시적으로 넘겨도 이를 허용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유럽중앙은행(ECB) 내부에서도 미국처럼 AIT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물가상승률 2%가 도달 불가능한 신기루처럼 여겨졌던 터라 시장은 물가상승률이 2% 근처만 가도 화들짝 놀라고 있다. 중앙은행이 스스로 자신들의 입지를 좁혀왔던 셈이다. 물가목표제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한국은행, 세계은행 등)
◇ 신기루가 된 물가 목표 2%

미국은 2012년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시절에 ‘2% 물가목표제’를 도입했다. 1996년 이후 연준은 내부적으로 물가목표 2%를 기준으로 삼았으나 이를 공표하지 않았다. 그러다 버냉키 의장이 시장과의 소통 강화를 이유로 2% 물가목표제를 공표했다.

그러나 작년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보다 낮았던 기간을 상쇄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목표 이상의 물가상승을 허용하는 AIT를 채택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2013년부터 작년까지 8년간 2017년(2.1%), 2018년(2.4%)을 빼놓고 6년간 물가상승률이 2%를 밑돌았다.

우리나라는 2016년 ‘2% 단일 물가목표제(2013~2015년 2.5%~3.5%)’를 채택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단 한 번도 2% 물가를 달성한 적이 없다. 금융통화위원회 내부에서도 “어떻게 2%를 달성하겠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한은은 1%대 저물가에도 오히려 2017년 11월, 2018년 11월에 각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리기도 했다. 중앙은행의 물가목표제는 당초 의도와 달리 사실상 금리 결정에 있어 어떤 메시지도 주지 못했던 셈이다.

미국은 그나마 올해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연준 2.1% 전망, IMF 2.4% 전망)를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에 대해선 증권사 일부에서만 2%대를 전망할 뿐 올해도 목표치를 미달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작년 4월 마이너스 국제유가, 5월 -0.3%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2분기를 지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는 더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인플레이션 시대’의 도래 여부는 기저효과가 사라지는 하반기에나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전까진 지지부진한 논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 파이터냐, 디플레 파이터냐 갈림길

중앙은행으로선 코로나19 이전처럼 ‘디플레이션 파이터’가 돼야 할지, 그 훨씬 이전처럼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준비 태세를 갖춰야 할지 판단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일단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미국처럼 AIT를 채택하지 않더라도 좀 더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도 용인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유로존 내부에선 미국처럼 AIT를 채택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올리 렌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는 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인플레이션의 언더슈팅(기준선 하회) 역사를 고려할 때 일정 기간의 인플레이션 오버슈팅(기준선 상회)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마이너스 정책 금리에 월 200억유로의 자산 매입을 지속하고 있음에도 8년간 2% 물가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는 “ECB의 사실상 물가목표치는 1.6~1.8%”라며 “더 나쁜 것은 2%가 상한선으로 인식돼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도 AIT를 채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터라 아직까진 시험 단계다. 연초 인플레이션 논쟁이 벌어지며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1.7%까지 치솟는 등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못 이겨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최근에도 이런 논쟁은 계속되고 있으나 3월 물가상승률이 2.6%로 뛴 데 이어 4월엔 3.6%로 전망되는 데도 10년물 국채 금리는 1.6% 수준으로 오르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호주중앙은행(RBA)은 2024년까지 금리를 변경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호주는 올 6월까지 전년동월비 물가가 3%로 전망되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2~3% 목표 범위에 있을 동안에는 인상없이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0년대, 1990년대 인플레이션 시대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시화된 디플레이션 시대를 지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어떤 물가 흐름이 이어질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변곡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경제 규모, 경제 구조가 제각각인데도 전 세계적으로 2%대 물가를 목표치로 고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과연 2%가 우리나라에 맞는 옷인지, 어차피 못 지킬 2%라면 다른 식의 개선점을 찾아야 하는 지 한은이 깊게 고민해야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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