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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우리나라 배출권 거래 시장은 거래량이 적고 가격 변동성은 높아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투자를 유도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특히 최근에는 배출권 가격이 역대 최저 수준(7월 24일 톤당 7020원)에 도달해 제도의 실효성을 저해했다. 이에 환경부는 배출권 거래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개선안을 마련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배출권 이월 제한 및 상쇄배출권 전환 의무 기한 완화다. 이 제도들은 그간 시장 본연의 기능을 왜곡하고 기업의 자유로운 배출권 운용을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환경부는 배출권이 남은 기업의 이월 물량을 당초 판매량의 1배에서 3배로 완화하고, 배출권이 부족한 기업도 부족량보다 더 매수해 이월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또 배출권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배출권 거래제 적용 기업이 외부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한 실적을 상쇄배출권으로 전환해야 하는 의무 기한도 기존 ‘감축실적 인증 후 2년’에서 ‘5년’으로 연장한다.
다만 이월 제한 완화와 관련해, 할당량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순매수 기업의 경우 전량 이월을 허용한 반면 할당 받은 배출권 양에 비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한 순매도 기업엔 이월 수준을 3배 늘린 점은 업계 일각에서 형평성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이렇게 되면 순매도 기업보다 순매수 기업이 시장에서 더 큰 유연성을 갖게 됨으로써 온실가스 감축 유인이라는 배출권 거래제의 애초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배출량이 할당량에 임박한 경우엔 이월이 제한되는 순매도 기업으로 남기보다는 배출량을 오히려 늘려 순매수 기업이 됨으로써 무제한 이월권을 획득하는 게 기업의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제4차 계획 기간(2026~2030년)이 시작되는 2026년처럼 배출허용총량이 급격히 감소해 가격이 크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선 순매수 기업들은 현재의 낮은 가격에 가능한 많은 배출권을 사서 저축하려는 성향을 보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환경부는 현실적으로 이 같은 지적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배출권 거래 시장이 아직 배출권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사고팔 수 있는 구조가 아니란 이유에서다. 환경부의 입장과 별개로 배출권 시장 일각에서는 환경부가 오는 2025년을 목표로 추진하는 배출권 선물 시장이 열리면 사실상 이월 무제한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이월 완화와 관련한 형평성 문제는 과도기적 상황에서의 단기적 논란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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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배출권 가격과 연동된 금융상품(ETN: 상장지수증권, ETF: 상장지수펀드) 등의 출시로 투자를 유도하고, 위험 관리를 위한 선물 시장도 개설한다. 현재는 유럽연합(EU) 등 해외 배출권 가격과 연동된 금융 상품만 국내에 출시돼 거래 중이다.
이와 함께 유상할당 경매 물량의 탄력적 조정, 시장조성자 추가 지정 등 시장 안정화를 위한 조치들도 함께 추진한다. 배출권 수급 상황을 분석해 매년 유상할당 경매 물량을 조정하고, 내년까지 중장기적 한국형 시장안정화제도(K-MSR) 도입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안정화제도가 도입되면 배출권 수급 상황을 고려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연간 경매량을 조정할 수 있다.
시장 참여자의 불공정 거래 등을 막기 위해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 협업을 통해 관리·감독 체계도 구축한다. 다만 위탁거래 도입과 관리 체계 구축은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현재 관련 법안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이번 대책은 전반적으로 규제 개선 부분을 제외하면 정부가 기존에 이미 여러 차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제3차 국가 배출권할당계획(2021~2025년) 내에 하겠다고 약속한 내용들이다. 다만 이번 대책은 이 같은 계획들의 구체적 이행 시기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기존 발표들의 액션 플랜 성격으로 평가받는다. 아울러 이번 대책의 추진 속도는 국회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시장에서는 업계의 목소리를 상당 부분 반영한 이번 대책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윤여창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시장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현 시점에서 시장 안정화 조치는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만 향후 좀 더 명시적이고 예측 가능한 시장 안정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며 “선물이나 ETF까지 배출권 시장을 확장한다면 이 시장도 결국 금융 시장처럼 움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의 감독 체계 구축 역시 필수적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