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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운맛 책임지는 고추는 어떻게 우리나라에 왔을까
고추는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됐을까. 고추의 글로벌 대이동의 배경엔 유럽에서 발발한 흑사병이 있다. 1346년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다. 공포에 빠진 유럽인들은 흑사병 특효약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의사들은 향신료 ‘육두구’가 흑사병에 효과가 있다고 여겼고, 이 때문에 육두구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문제는 동남아시아에서 나는 육두구를 유럽에서 수입하기 어려웠단 점이다. 동남아시아의 문물은 실크로드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당시에는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와 중동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유럽 가톨릭 국가들과 적대관계에 있던 오스만 제국으로선 적국이 필요한 물자의 무역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결국 유럽은 동남아시아로 가기 위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대항해 시대가 시작됐다.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콜럼버스는 1492년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원했던 육두구를 찾지 못했다. 콜럼버스는 육두구의 대체제로 신대륙에서 자생하던 다른 향료를 구해올 수밖에 없었다. 고추가 유럽으로 퍼진 배경이다.
유럽에 전파된 고추를 아시아에 전파한 것은 포루투갈 선교사들이었다. 선교사들은 인도, 동남아시아에 이어 일본에 도착해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선교사들은 당시 일본의 영주였던 ‘다이묘’들의 환심을 사고자 신문물을 건넸는데, 이 중에도 고추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고추를 동남아시아에서 온 약초란 뜻으로 ‘남만초’라 불렀다.
일본에 들어온 고추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조선으로 건너온다. 임 박사는 “일각에서는 일본에서 고추가 들어왔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김치 자생론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라면서 “다만 1614년 쓰인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도 남만초는 왜에서 들어왔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사람들도 고추는 일본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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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매운맛,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나
임 박사는 한국의 매운맛은 여타 매운맛과는 차별점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태국, 멕시코에도 강렬하고 얼얼한 매운맛을 자랑하는 음식은 넘치지만 한국처럼 뒷맛에 감칠맛이 남는 매운맛 요리는 찾기 어렵단 설명이다.
음식 만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일본 만화 ‘맛의 달인’에서도 한국 특유의 매운맛을 격찬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한국 동태찌개를 먹고 “매운맛 밖에 안 느껴지는데 먹을 수록 숨겨진 맛이 느껴진다”라고 평가한다. 다른 동료들도 매운맛 뒤에 감칠맛이 해일처럼 밀려든다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특유의 매운맛은 한국의 토양과 조리법의 영향이란 설명이다. 임 박사는 “한국 토양에서 자란 고추는 다른 지역에서 키운 고차보다 단맛은 3배 이상 강한 반면 매운 맛은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청양고추조차 세계에서 가장 매운 미국의 캐롤라아나 리퍼에 맵기에 비하면 10분의 1에 불과하다. 한국산 고추는 더 달고 덜 맵워 식재료로 적합하단 설명이다.
일본, 프랑스처럼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게 아니라 발효하고 푹 끓여 새로운 맛을 이끌어 내는 한국식 조리법도 특유의 매운맛을 만드는 원인이다. 고추장을 비롯해 김치찌개, 떡볶이, 낚지볶음 등 대표적인 매운맛 음식들이 발효와 끓이고 졸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임 박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매운맛을 세계에 알리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매일 집밥으로 접하는 매운맛은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음식 산업의 발전에도 도움을 준다”라면서 “김치 등 전통 음식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매운맛을 퍼뜨기 위한 방안을 머리를 맞대 고안해야 한다”고 조언하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