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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가드레일 한숨 돌렸지만…中 수출통제 유예 연장 최대 관건"

김응열 기자I 2023.03.22 15:24:08

[전문가 5인 긴급진단]
"中 공장 질적 업그레이드 가능…우려보다 규제 수위 낮아"
"10년간 中공장운영 큰 문제 없어…中수요 대응할 수 있어"
"10월 유예 종료 수출통제 변수…끝까지 협상력 발휘해야"

[이데일리 김응열 이다원 기자] 미국 정부가 21일(현지시간) 발표한 반도체 보조금 ‘가드레일(안전장치)’ 세부지침을 두고 반도체 전문가들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 기업들은 중국 내 반도체공장의 기술 업그레이드가 막히는 걸 가장 우려했는데 한동안은 이 같은 부담을 덜었다는 평가다. 다만 미국의 대중 반도체장비 수출 통제라는 변수가 여전히 남아 안심하기는 이르다. 전문가들은 아직 남아 있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지원법 서명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AFP)
“애초 우려보다 수위 낮아져…최악 피했다”

22일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미국 가드레일 지침은 우리 반도체기업이 적어도 10년간 중국에서 공장 운영이 가능하다는 의미”라며 “애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규제 수위가 낮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도 “생산량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숨통이 트인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국 상무부는 21일(현지시간)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을 받을 경우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확장을 규제하는 가드레일 세부지침을 공개했다. 지침에 따르면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 확장이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된다. 첨단 반도체는 현재 시설의 5%, 범용 반도체는 10% 이내다. 생산능력 확충에 상한선은 생겼지만 중국 시설의 기술 업그레이드는 가능하다.

그간 업계에선 미국이 중국 내 반도체 투자를 전면 금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중국 공장의 기술 개선도 막혀, 그간 쏟은 돈이 아깝더라도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가 서둘러 중국을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생산시설에 각각 30조원 이상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脫中 부담 일단 덜어…“놓치기 어려운 큰 시장”

이번 가드레일 세부지침 공개에 따라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당장 우리 기업의 ‘탈(脫)중국’ 필요성도 다소 줄었다. 삼성전자는 자사가 생산하는 전체 낸드플래시 중 40%를, SK하이닉스는 낸드 20%, D램 40%를 중국에서 만든다. 대규모 시장인 중국에서 두 회사가 적잖은 매출을 내는 만큼 중국 공장은 중요도가 높다.

이규복 회장은 “중국 시장의 규모 때문에 우리 반도체기업들이 공장을 세운 것”이라며 “기존 공정만이라도 중국 수요에 대응할 필요성이 큰 만큼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있는 시설을 유지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한 데는 우리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주효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중국 규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반도체 기업에도 경영상 어려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대변해왔다. 우리 기업들도 통상 전문가들을 영입해 미국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증설 제한은 있으나 기술 발전 규제는 없다는 점이 묘미”라며 “우리 정부가 협상력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수출통제 핵심변수…“더 큰 협상력 필요”

관건은 미국의 반도체장비 수출 통제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10월 미국 기업이 △18나노미터(㎚)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나노미터 이하 비메모리칩(로직칩)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장비나 기술을 중국에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우리 기업을 상대로는 올해 10월까지 1년간 해당 규제를 유예했다.

미국이 가드레일 조항에서 중국 시설의 기술 업그레이드를 막지 않더라도 반도체장비 수출을 통제한다면 중국 시설의 기술 상향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미국이 우리 기업에 적용한 수출 통제 유예를 연장하지 않으면 중국 공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중국 시설의 업그레이드는 미국이 장비 수출을 허가해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결과적으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가 상당히 중요해졌다”고 진단했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도 “기술 제한이 아예 풀린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우리 기업 입장에서 최첨단 기술을 중국에 적용하기는 부담스럽고 미국도 최신 장비를 중국에 팔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장비 수출 통제 유예와 관련해 정부가 재차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재근 교수는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장비 수출 통제 1년 유예를 2년으로 혹은 5년으로 더 연장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내 투자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데에도 의견을 모았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중국이나 보조금 지급 조건이 까다로운 미국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능력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20년간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시설 30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것 역시 투자의 안정성을 고려한 결과다. 범 교수는 “생산시설을 우리나라에 구축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평택 공장(왼쪽)과 SK하이닉스 이천 본사.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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