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닷컴 제공] ‘시간을 박제하는 사람’ 구본창(58)의 41번째 개인전이 5월10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에서 열리고 있다.
5년 만의 개인전으로, 작가의 30여년 작업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48점의 작품이 걸렸다. 작품과 별개로 전시회의 숨은 주인공은 전시장 1층에 설치된 그의 유년 시절 물건 200여점이다. 작가가 6세 때부터 간직해 온 물건들이 추억의 창고에서 죄다 나왔고, 낡고 이름없는 수집품들을 통해 그의 가정사와 개인사, 생각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숨결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객을 맞는 건 투명플라스틱 상자 속에 담긴 6개의 물건이다. 일제강점기에 고려청자를 본떠 만든 청자, 김장독을 묻으려고 마당을 파다 발견된 하얀 색 수반, 아무나 볼 수 없었던 ‘SEARS’백화점 상품광고 잡지, 섬유업을 하던 아버지가 1964년 도쿄올림픽 출장에서 가져온 올림픽안내서, 영화 <졸업>의 더스틴 호프만 얼굴이 표지인 카세트테이프 케이스, 앉은뱅이 선풍기 등이 작가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다음 방의 대형 테이블에 올려진 빛바랜 수백점의 ‘추억’들은 아무렇게나 놓인 듯하지만, 작가가 구성한 이야기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설치된 것이다. 가령 헐어빠져 박음질한 실이 너덜거리는 배구공 옆엔 실타래가 놓여있다. 실은 운명의 끈이다.
2층엔 이타미 준의 달항아리 콜렉션, 오사카 동양도자 박물관의 한국백자 콜렉션, 도쿄 민예관의 야나기 무네요시 한국곱돌 콜렉션, 프랑스 기메박물관의 한국탈 콜렉션 등을 담은 사진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다니던 직장을 떠나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에서 사진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서편제> <우리 기쁜 젊은 날> <경마장 가는 길> <댄서의 순정> 등 영화포스터 작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다.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02)733-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