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서는 법률을 만든 취지에 맞지 않는 과도한 규제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사모펀드(PEF), 신기술금융사 등 금융위원회 소관 VC와 창업투자회사 등 중소벤처기업부 소관 VC가 다른 법으로 규제를 받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VC가 기업공개(IPO) 형태 상장이 아닌 스팩과의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한국거래소가 지난해부터 비상장법인과 스팩의 합병 시 ‘스팩소멸방식’의 합병도 함께 허용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합병 시 기존처럼 비상장법인이 소멸하는 방식이 아닌 스팩이 소멸되는 형태로 제도를 바꾸면서, 비상장법인이 법인을 변경하고 재등록하는 등의 부담 요인이 줄었다. 합병 기간 중 출자 사업에 지원할 수 없다는 등의 문제도 해결이 가능했다.
제도는 개선됐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캡스톤파트너스와 HB인베스트먼트 모두 같은 이유다. 지난 2020년 만들어진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법)’이 발목을 잡았다.
이 법의 시행령 25조(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의 행위제한)는 창업투자회사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에서 규정하는 금융회사의 주식을 취득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창업투자회사 역시 금융실명법상 금융회사에 포함되므로 창투사가 창투사의 지분을 가질 수 없게 된다.
통상 스팩이 상장할 당시 VC는 일부 지분을 보유하며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유망한 비상장법인과의 합병을 추진하는 딜 소싱 역할을 맡을 수 있는데다, VC 입장에서는 고유계정을 통한 투자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HB인베스트먼트와 캡스톤파트너스가 합병을 추진했던 ‘NH스팩23호’와 ‘NH스팩25호’는 각각 SBI인베스트먼트와 우리벤처파트너스(옛 다올인베스트먼트)가 최대주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합병 시 SBI인베스트먼트와 우리벤처파트너스가 각각 HB인베스트먼트와 캡스톤파트너스의 지분을 갖게 된다.
◇업계 “규제 비합리적”…중기부 산하 창투사만 다른 규제
HB인베스트먼트와 캡스톤파트너스는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후 모두 스팩 상장을 철회했다. 이들은 추후 직상장을 통해 증시에 발을 들이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벤처투자법상 문제가 된 지점이 법률의 제정 취지에 맞는 방식으로 적용됐는지는 곱씹어볼 대목이다. 창업투자회사가 금융회사 지분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한 ‘금산분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해당 조항이 취지와는 다소 관련성이 떨어져 보이는 VC의 스팩 합병상장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문제점을 파악한 중기부는 제도 개선 여부를 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2020년 만들어진 벤처투자법 자체가 제정 단계에서부터 다소 급하게 만들어지는 등 아직도 법 자체가 미비한 측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사례는 이슈가 되면서 개선 가능성이 생겼지만, 이것 말고도 현실에서 부딫히는 사소한 문제는 차고 넘친다”고 털어놨다.
사모펀드나 신기술금융사와 같은 금융위 소관 VC와 달리 창업투자회사만 중소벤처기업부 소관으로 벤처투자법의 규제를 받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기술금융사는 여신금융업법을, 사모펀드는 자본시장법을 따르는데, 벤처투자법만 행위를 제한하는 요건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사실상 같은 VC업계가 서로 다른 규제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 관계자는 “신기사는 상장 시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는 반면 창투사는 안 된다는 것도 사실상의 차별”이라며 “최근에는 자산운용사와 Co-Gp(공동운용)을 하려던 창투사가 자본시장법과 벤처투자법 규정 모두를 살펴보다 결국 규정 개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