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정부가 올 연말까지 대기업 500여곳을 상대로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선정한다. 최근 경기 침체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에 대해선 이전보다 더 강화된 기준을 적용해 한계기업을 걸러낼 방침이다. 부실 우려가 큰 데도 정부의 정책 금융이나 은행 대출을 통해 연명하는 기업은 시장 논리에 따라 신속하게 정리해 한정된 자원이 부실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걸 막으려는 취지다.
아울러 정부는 금융위원회가 중심이 된 범정부 협의체를 꾸리고 불황에 시달리는 조선·해양·건설산업 등 국내 산업 전반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산업 구조조정에 나선다. 최근 대규모 부실을 낸 대우조선해양처럼 기업 부실이 계열사나 협력회사를 비롯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기업 부채에 대한 사전 리스크 관리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앞으로 부실기업 솎아내기 작업이 활발히 이뤄질 전망이다.
올 연말 부실 대기업 솎아낸다
금융위원회는 13일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한 기업 구조조정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11월부터 연말까지 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500억원이 넘는 대기업을 상대로 채권은행의 수시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 대기업에 대한 수시 신용위험평가는 매년 상반기에 이뤄지지만 정부는 최근 기업 부채에 대한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올 연말 한번 더 시행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대략 500여곳의 대기업이 이번에 신용평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신용위험평가는 채권은행들이 대기업에 대해 부실위험 정도를 따져 A, B, C, D 4등급으로 분류하는 작업이다. C등급과 D등급을 받은 기업은 구조조정 대상으로 각각 워크아웃과 법정관리 절차를 밟는다. 워크아웃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따라 채권단과 기업이 자율적인 협약을 맺고 정상화를 추진하지만 법정관리 대상 기업은 채권단의 지원을 받지 못해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 된다. 지난 상반기 땐 572개사를 상대로 이뤄진 신용위험평가에서 35개사가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으로 선정됐고 이 중 시장에서 퇴출 수순을 밟는 법정관리(법원 주도의 구조조정) 대상 기업은 19개사에 달했다. 고승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연말까지 대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 작업은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 중소기업을 솎아내는 작업도 빠르게 이뤄질 전망이다. 금융위는 현재 중소기업을 상대로 진행 중인 신용위험평가를 이전보다 강화된 기준에 따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올해 채권은행의 신용위험평가를 받는 대상 중소기업은 1934곳으로 지난해보다 325곳이나 증가했다. 이처럼 정부가 부실기업 솎아내기에 적극 나서는 것은 이른바 좀비기업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LG경제원이 최근 628개 비금융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부채상환 능력을 분석한 결과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좀비기업(이자보상배율 1 미만)은 2010년 24.7%에서 올해 1분기(1∼3월) 34.9%로 크게 늘었다.
경제 단기 충격 불가피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작업과는 별도로 정부는 금융위가 중심이 된 정부 협의체를 꾸리고 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에 나선다. 조선업처럼 구조적 불황을 겪고 있는 산업은 개별 채권은행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조선업과 같은 국가 기간 산업이 쓰러지면 지역 경제는 물론 국가 경제에 치명타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다만 개별기업을 직접 지원하지 않고 채권은행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개입할 방침이다. 정부 내 협의체는 금융위원장 주재 각 부처 차관급으로 구성되고 금융위 사무처장이 2주마다 실무 내용을 논의한다.
정부가 부실기업 선정에 속도를 내기로 하면서 시장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부실기업이 갑자기 쏟아질 경우 금융사 부실로 이어지는 등 단기 충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정부가 한계기업을 솎아내기 위해 적극 나설수록 금융사로서도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게 되고 양호한 기업도 부실기업으로 분류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정부는 부실기업 솎아내는 과정에서 속도 조절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