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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죄부터 존엄사까지… K콘텐츠, 이야기의 경계를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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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백 기자I 2026.10.24 18: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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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10년]
편성·시청률 제약 벗어나 소재 다양화
16부작·60분 틀 깨고 형식도 유연하게
한국적 이야기로 세계 시청자 공감 이끌어

[이데일리 윤기백 기자] 소년범죄부터 군대 내 부조리, 존엄사까지. 과거 방송 드라마에서 쉽게 다루기 어려웠던 소재들이 이제는 세계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정해진 편성과 시청률의 제약에서 벗어나면서 한국 콘텐츠의 이야기와 표현 방식도 다양해졌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지 10년. 콘텐츠 제작 시스템뿐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D.P' 시리즈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왼쪽)과 '소년심판'의 김민석 작가.(사진=넷플릭스)
'D.P' 시리즈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왼쪽)과 '소년심판'의 김민석 작가.(사진=넷플릭스)
소년범죄·군대 부조리까지…사회적 질문 던지는 콘텐츠

방송계에서 20년 넘게 일한 최경숙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기획PD는 이러한 변화를 현장에서 체감한 인물이다.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을 기획한 그는 “이전에는 15세 시청자를 대상으로 기획해야 시청률도 높고 방송국 편성도 가능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볼 이야기를 만들었다”며 “넷플릭스 이후에는 훨씬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게 됐고, 소재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기존 방송 환경에서는 편성 가능성과 대중성이 중요했다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다양한 취향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기존 공식을 벗어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은중과 상연’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친구이자 라이벌인 두 여성의 일생을 그린 작품으로,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상연이 은중에게 조력 사망을 위한 마지막 여행을 부탁하면서 존엄한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제62회 백상예술대상 방송 부문 작품상과 극본상, 제5회 청룡시리즈어워즈 대상 등을 받았다. 박지현은 한국인 최초로 국제에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D.P.’는 탈영병을 쫓는 군무 이탈 체포조를 통해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를 조명했다. 한준희 감독은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며 “답은 알 수 없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밝혔다. 작품 공개 직후 국내 구글의 ‘탈영’ 검색량이 7.4배 증가했고,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도 군의 지휘 사각지대를 찾아가는 새로운 동력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소년범죄를 다룬 ‘소년심판’ 역시 사회적 논쟁을 피하지 않았다. 김민석 작가는 엄벌 여론과 소년범 보호라는 상반된 입장을 두 인물로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제작 과정에서 넷플릭스 담당자가 “처음부터 글로벌 성적에 크게 연연하기보다는 우리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한 일화를 소개했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충실히 담아낸 이야기가 오히려 세계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기리고'를 연출한 박윤서 감독(왼쪽)과 '고백의 역사'를 연출한 남궁선 감독.(사진=넷플릭스)
'기리고'를 연출한 박윤서 감독(왼쪽)과 '고백의 역사'를 연출한 남궁선 감독.(사진=넷플릭스)
16부작·60분 공식도 깨졌다…이야기에 맞춰 달라진 형식

소재뿐 아니라 작품의 형식도 유연해졌다. 과거 방송 드라마가 통상 16회, 회당 60분 안팎의 편성 틀을 고려했다면, 넷플릭스에서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회차와 러닝타임을 조정할 수 있다. 정해진 방송 시간을 채우기보다 이야기에 적합한 길이를 선택하는 것이다.

‘기리고’의 박윤서 감독은 당초 45분 분량이었던 대본을 30분 초반대로 줄인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방송 드라마였다면 분량을 무조건 지켜야 했을 텐데 넷플릭스에서는 ‘재밌게만 해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며 “자유를 얻자 작가와 중간에 끊을 타이밍을 조절하며 많은 걸 바꿨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유통망은 대중성이 제한적인 장르에도 새로운 기회를 열었다. 1998년을 배경으로 첫사랑을 그린 영화 ‘고백의 역사’가 대표적이다. 남궁선 감독은 “한 국가 안에서는 팬층이 광범위하지 않은 아기자기한 장르인데 전 세계 팬들이 합쳐지니까 굉장했다”며 “콜롬비아, 폴란드 등에서 ‘너희 영화 우리나라에서 난리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배우들이 체감하는 변화도 크다. ‘참교육’의 김무열은 “예전에는 TV와 영화에서 보여드릴 수 있는 게 각각 국한돼 있었는데, 넷플릭스를 통해 두 가지의 장점을 함께 보여드릴 수 있게 됐다”며 “배우에게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무대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한국 진출 10년이 넓힌 것은 작품의 유통 범위만이 아니다. 편성의 제약에 가려졌던 이야기들이 세상에 나올 가능성도 확대했다. 특히 한국적인 소재가 세계적인 공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K콘텐츠의 다음 경쟁력은 익숙한 성공 공식을 반복하기보다 아직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이야기와 새로운 시선을 발굴하는 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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