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의원들이 정책지원관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회 사무국 소속인 정책지원관은 공무원 신분으로 의정자료 수집·조사·연구 등으로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종종 본 업무와 상관없는 일들을 한다. 의원의 사적 심부름과 대학원 리포트 과제, 발표 과제까지 해주는 실정이다. 일부 의회는 1년간 계약한 정책지원관의 근무실적 반영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 연장을 해주지 않아 고용불안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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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수도권 의회, 정책지원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21년 10월 정책지원관 조항을 신설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2022년 1월부터 시행했다. 개정법 시행으로 전국 지방의회는 2022년부터 정책지원관을 채용했다. 대체로 6~7급 임기제공무원으로 뽑고 일부는 8~9급으로 채용한다.
하지만 일부 광역·기초의회 의원들은 정책 취지와 무관하게 정책지원관에 갑질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광역의회 의원 A씨는 올 4~6월 자신의 대학원 석사 과정에서 제출해야 할 중간·기말고사 리포트를 정책지원관 B씨에게 작성해 오라고 지시했다. 또 대학원 수업시간에 발표할 프리젠테이션(PPT) 자료도 만들라고 B씨에게 요구했다. 1년짜리 고용계약이라 앞으로 계약 연장이 필요한 B씨는 A씨한테 흠을 잡히지 않으려면 밤을 새워가며 리포트 10개와 PPT 자료 4개를 만들어줬다.
B씨는 “의회 업무도 아닌데 의원이 개인적인 일을 정책지원관에게 시키는 것은 잘못됐다”며 “하지만 을의 처지에 있는 정책지원관이 의원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생길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의회에서도 의원들이 정책지원관에게 백화점에 가서 선물을 사오라고 시켰고 대학원 중간·기말고사 리포트를 대신 작성해오라고 지시하는 것이 빈번했다. 야근수당도 주지 않으면서 새벽까지 일을 시키고 커피·청소 심부름도 일상적으로 요구했다.
의원들의 ‘갑질’이 난무한 상황에서 정책지원관들이 나름 비위를 맞춰가며 일하지만 의원들의 눈 밖에 나거나 의회 의장, 인사담당 직원 등에게 안좋게 비치면 계약연장이 되지 않고 1년 만에 백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남동구의회, 줄줄이 고용 종료 논란
인천 남동구의회는 지난해 6월 계약을 1년 연장한 정책지원관 4명과 신규 채용한 4명(계약기간 1년)에 대해 올 6월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모두 고용을 종료했다. 당시 임용권자였던 C 전 의장이 결정해 이뤄진 것이었다. C 전 의장은 올 4월 의총을 열어 기존 정책지원관 8명 전원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신규 채용 과정을 거쳐 4명을 새로 임용하기로 의견을 모아 결정했다. 8명에서 부족해진 정책지원관 4명 자리는 기존 공무원으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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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구의회에서 고용이 종료된 D 전 정책지원관은 “정기평가 A등급을 받았지만 계약 연장이 안됐다”며 “의회의 정책지원관 운영이 불공정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C 전 의장은 “의총에서 정한 것을 이행했을 뿐”이라며 “의원들이 정책지원관 4명만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았고 8명 중 4명만의 계약 연장을 위한 매뉴얼(평가 방식)이 없어 새로 채용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다.
정책지원관의 고용불안을 야기한 것은 행정안전부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행안부의 지방공무원 인사제도 운영지침상 의회는 정기평가 이후 6개월 안에 근로계약이 만료되는 정책지원관에 대해서는 최종평가 없이 고용을 종료할 수 있다. 이는 정기평가 이후 6개월이 지나 계약이 만료되는 정책지원관은 최종평가를 거쳐 계약 연장 여부를 정하도록 규정한 것과 달라 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행안부는 “정책지원관제 안정화를 위해 여러 의견을 수렴한 뒤 보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