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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황제’로 불린 애덜슨은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다. 1933년 보스턴에서 리투아니아 이민자인 택시 기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두 살에는 삼촌에게서 빌린 200달러로 보스턴 뒷골목에서 신문을 팔며 돈을 벌었다. 16세 때는 공장과 주유소 등에서 사탕 가게를 운영했으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이스크림 판매원, 속기사, 투자 자문가 등을 전전했다. 그가 경험한 직업만 50여개에 달한다.
1960년대 초에는 한 여행사 주식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성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60년대 말 증시가 폭락하며 재산 대부분을 날린 것. 부동산 중개업으로 재기를 노렸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반전의 계기는 1971년 찾아왔다. 작은 컴퓨터 잡지사를 인수한 뒤 한 아파트 전시회에서 컨벤션 분야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아파트까지 팔며 1975년 인터페이스그룹을 세웠다. 1979년에는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호텔에서 첫 컴덱스쇼를 열었다. IBM 등이 참여하면서 컴덱스쇼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980년대 후반에는 순이익만 2억5000만달러를 냈다.
이후 애덜슨은 카지노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1989년 대관료를 줄이려 라스베이거스 샌즈 호텔 앤드 카지노를 1억28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시아로 무대를 넓혀 마카오에 베네시안 마카오를 열었다. 당시 기준으로 세계 7번째 규모 호텔이었다. 풋볼 경기장 10배 크기의 이 호텔 카지노는 중국 등 아시아의 도박꾼들을 끌어모았다. 2014년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서는 408억달러 순자산으로 세계 8~9위 부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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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도 화답했다. 취임식에 애덜슨과 미리암 부부를 초대해 백악관에서 함께 식사하는가 하면, 2018년에는 이스라엘 태생인 미리암에게 국가 최고 민간인 영예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수여했다. 의학연구와 유대인 관련 기금을 마련한 공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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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덜슨은 생전 북한에 카지노를 짓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애덜슨은 2018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자선행사에서 “나는 북한에 다시 가고 싶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한의 전쟁을 끝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북한에 가려는 건 북한과 싸우려는 게 아니라 북한에 카지노를 개장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공화당 인사들은 그의 사망 소식을 애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는 위대한 사람을 잃었다.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며 “애덜슨은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을 살았다”고 애도했다. 2004년 미 대선에서 애덜슨이 후원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성명에서 “(아내인) 로라와 나는 친구의 사망을 애도한다”며 “애덜슨은 수만명을 고용하고 수백만명을 즐겁게 하는 기업을 건설하기 위해 분투했다”고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에서 이스라엘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그의 행동은 대대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