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된 스팩, 주가 1달러 미만 '뚝'…파산·매각도 잇따라

방성훈 기자I 2023.04.28 10:48:45

WSJ, 2016~2022년 美증시 상장한 스팩 342개사 분석
101곳이 1년내 현금고갈 위기…평균 5개월치 보유
안정적인 현금흐름 90곳 그쳐…12개사는 이미 파산
"한때 각광받았지만 이젠 파산법원으로 투자자 이끌어"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많은 인기를 누렸던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중 상당수가 ‘페니 주식’(penny stocks)으로 전락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페니 주식은 주당 1달러 미만에 거래되는 투기 성향이 강한 주식을 뜻한다.

(사진=AFP)


WSJ이 시장조사업체 스팩리서치와와 팩트셋의 데이터를 토대로 2016~2022년 스팩을 통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작년 3분기까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연간 또는 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342개사를 분석한 결과, 101개사가 향후 1년 이내에 보유 현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됐다. 평균적으로 이들 기업은 약 5개월 동안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분석 대상 스팩 중 긍정적인 현금 흐름을 보이고 있는 곳은 90여개사에 그쳤다.

스팩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뒤 비상장사와 합병해 우회 상장할 목적으로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로 ‘백지수표 회사’로도 불린다. 이같은 특성 덕분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했던 2020년 미 주식시장에선 스팩 투자 열풍이 일었다. 당시 미 정부의 경기부양책 및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로금리 등으로 막대한 유동성이 증시에 유입된 데다, 일반적인 기업공개(IPO)와 달리 까다로운 상장 절차 없이도 빠르게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엔 360억달러(약 48조원) 이상의 투자금이 한꺼번에 몰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미 증시가 하락하면서 스팩을 통해 상장된 기업들의 시장가치는 1000억달러(약 134조원) 이상 증발했다. 전기스쿠터 회사인 버드 글로벌,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패러데이 퓨처 등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기업들을 포함해 상당수 기업들의 주가가 상장 당시보다 90% 넘게 하락해 주당 1달러 밑에서 거래되는 등 상장폐지 위험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페니 주식으로 전락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스팩을 통해 상장한 기업들이 추가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뒤늦게 정리해고 등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지만 버틸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은 데다, 자금을 확보하더라도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연준의 고강도 긴축 등으로 고금리 부채만 쌓여가는 실정이다. 플로리다대 워링턴경영대학원의 제이 리터 교수에 따르면 스팩 열풍이 정점을 찍었던 2021년 스팩을 통해 상장한 기업들 중 흑자를 낸 기업은 약 15%로, 2013~2020년 평균 30% 대비 절반에 불과했다.

WSJ 분석 대상 가운데 이미 파산에 이른 기업도 12개곳에 달했다. 영국 괴짜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이끌었던 위성 발사업체 ‘버진오빗’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로켓 발사 시험에 실패하면서 자금난을 겪게 됐고, 이후 위성 벤처캐피털 등과 자산매각을 포함한 자금조달 협상을 벌여왔으나 결국 실패해 지난 3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최근 몇 달 동안 파산을 막기 위해 낮은 가격에 매각되거나 비상장사 전환을 택하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일부 기업은 또다른 스팩과의 합병을 시도하고 있다. WSJ은 “스팩은 한때 우회상장 수단으로 각광을 받으며 투자자들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였지만 이젠 투자자들을 파산 법원으로 데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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