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조 전 부총리는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타계했다. 향년 94세.
◇경제학원론 펴낸 한국경제 대부 타계
192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상과대를 졸업했다. 이후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 육군사관학교에서 통역 장과와 교관 등으로 복무한 후 미국 유학을 떠나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를 마치고 1968년 귀국해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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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경제학자의 길만 걸을 것 같았던 고인은 육군사관학교 영어 교관 시절 당시 생도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만난 인연으로 1988년 12월 경제기획원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 발탁돼 입각했다. 이후 1990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냈다. 1992년부터는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1995년에는 민주당에 입당해 제 1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취임 직전 벌어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취임식을 현장에서 맞으며 첫 업무를 사고 수습부터 하는 등 ‘안전 서울’ 행정에 주력했다. 당시 고인의 길고 흰 눈썹과 그동안의 대쪽 행보가 강조되면서 `서울 포청천`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서울 시정을 이끌면서 1997년에는 제15대 대통령 선거 주자로 거론돼 9월 시장 사퇴 후 통합민주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단일화하면서 대선을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신한국당과 합당하면서 한나라당을 창당해 총재에 오르기도 했다. 한나라당이라는 당명은 고인이 직접 지었다.
이후 1998년 강원 강릉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돼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국민당 대표로 당을 이끌었지만 선거 참패 후 정계를 떠났다.
◇“큰 별 졌다”…빈소에 각 계 인사 조문 이어져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첫날에는 정·재계 등 각 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25일 오전,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남희 씨(92)와 장남 기송, 준, 건, 승주 씨가 있다.
김명호 전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오전 빈소를 찾아 “(제가) 고인 다음으로 한은 총재를 했는데 사제지간은 아니었지만 학교 선배이고 사회생활도 비슷하게 해서 오랫동안 잘 지냈다”며 “최근 건강이 계속 안 좋으셨는데 큰 별이 하나 떨어졌다”고 했다. 조 전 부총리를 “한국 경제계와 학계의 큰 산”이라고 칭했던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빈소에서 “개인적으로 고인을 경제부총리 비서관으로 모실 때 고인이 보였던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과 밝은 미소가 오늘 더욱 그립다”며 “고인의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 경제가 정도를 걸으며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학재 전 서울시 부시장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가장 깨끗하고 정직한 분”이라며 “저뿐만 아니라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일만 잘하면 쓰셨다”고 회고했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학자로서는 물론 한은 총재와 경제부총리를 역임하며 한국 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제게 가르침을 주신 스승이기도 하고 지금 한국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고인이 주신 여러 지혜를 다시 새겨 보고자 한다”고 했다.
이 총재는 이날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제92차 국제결제은행(BIS) 연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던 차여서 빈소는 찾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화와 조기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이 밖에도 국민의힘 이준석, 안철수, 배현진, 태영호 의원과 한덕수 국무총리, 정운찬 전 국무총리, 홍준표 대구시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조화를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